“제발 죽여줘” 암투병 20년지기 부탁에 살해한 女, 항소심서 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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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2월 10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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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암 투병으로 고생하던 20년 지기 친구로부터 ‘자신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살해한 40대 여성이 항소심에서 감형됐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법 제2-3형사부(부장 박정훈)는 촉탁살인 혐의로 기소된 A 씨(47)의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 씨는 지난해 3월 19일 광주 광산구 자택에서 함께 거주하던 40대 여성 B 씨의 부탁을 받고 그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주검을 방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두 사람은 20여 년 전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며 친한 언니·동생 사이로 지내다가 2011년부터 한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4년 B 씨는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이후 투병에도 갈수록 병세가 나빠졌고 통증으로 인해 잠 못 드는 날이 많았다. 사망 직전에는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만큼 건강이 악화됐다.

B 씨는 2020년 초부터 A 씨에게 “몸이 아파 살 수가 없다. 제발 죽여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같은 해 말 함께 병원에 가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은 뒤 한 차례 범행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A 씨는 약을 먹고 잠든 B 씨를 살해하려 했으나, 중간에 깨어난 B 씨가 그만두라고 하면서 미수에 그쳤다.

이후 A 씨는 B 씨의 부탁대로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B 씨의 시신을 27일 동안 방에 방치하다 지난해 4월 15일 경찰에 자수했다.

B 씨가 작성한 유서에는 “언니(A 씨)에게 힘든 부탁을 했다. 언니도 피해자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큰 죄를 지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실직해 병원을 못 데리고 갔다. B 씨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1심 재판부는 같은 해 10월 “피고인은 가족은 아니었지만, 장기간 같이 산 동거인으로서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촉탁살인보다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없어져 1년 이상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던 점이 피해자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의 부탁을 받고 아픔을 줄여주려 범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가 가족과 단절된 채 장기간 피고인에게만 의존하며 생활한 점, 피해자의 유서 내용 등을 고려했다”면서도 “피고인은 피해자의 병세가 악화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 가족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고, 생전 피해자를 비교적 잘 돌봐왔던 점 등을 두루 참작한 결과 원심의 형이 무겁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가 있다고 본다”며 징역 1년으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A 씨가 범행을 자수한 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도 함께 고려했다.

A 씨는 항소심 재판을 받는 내내 일어선 채로 흐느끼며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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