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네”…4살 때 실종된 여동생, 62년 만에 만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5일 2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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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진명숙씨(여동생, 왼쪽)가 큰오빠 정형곤씨와 상봉해 포옹하고 있다. 2021.7.5/뉴스1 (서울=뉴스1)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진명숙씨(여동생, 왼쪽)가 큰오빠 정형곤씨와 상봉해 포옹하고 있다. 2021.7.5/뉴스1 (서울=뉴스1)
“기적 있다면 이게 기적이지, 기적 말고 다른 어떤 말로 설명이 되겠어요.”

5일 오전 10시 50분경 서울 동대문구 용두치안센터 2층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정형곤(76) 씨는 동생과의 만남을 앞두고 들뜬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 10분 뒤면 4살 때 실종됐던 여동생을 62년 만에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정각. 센터 밖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자 허공을 보며 앉아있던 형곤 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이 열리고 여동생 진명숙 씨(66)가 들어섰다. 1959년 둘째 오빠인 정형식 씨(68)를 따라 나섰다 인천 배다리시장에서 실종됐던 바로 그 여동생이었다.

큰 오빠인 형곤 씨는 진 씨의 손을 잡으며 “어렸을 때 모습 그대로네. 고맙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형곤 씨는 인천 미추홀구에, 진 씨는 직선거리로 20km 떨어진 경기 군포에 살고 있었지만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

진 씨는 형곤 씨 가족과 인사를 마친 뒤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캐나다에 사는 형식 씨 부부에게도 안부를 전했다. 화면으로나마 평생 찾아온 동생을 만난 형식 씨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형식 씨는 “그렇게 말이 없던 명숙이가 내 앞에만 있으면 수다쟁이가 됐다. 그 날도 좋아하던 나를 따라 시장에 나섰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진 씨는 화면 너머의 형식 씨에게 “오빠가 내 허리에 끈을 매놓고 다녔으면 나를 안 잊어먹었을 거 아녜요”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진 씨는 오빠의 손을 놓쳐 길을 잃은 뒤 인근 보육원에서 지내왔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진 씨는 한 수녀에게 입양됐다. 진 씨는 “이 과정에서 성까지 ‘진’으로 바뀌었지만 오빠들이 나를 부르던 명숙이라는 이름만은 잊지 않아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고 전했다.

이들 삼남매가 극적인 상봉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유전자 분석 결과가 큰 몫을 했다. 진 씨와 정 씨 형제는 성인이 된 이후 내내 서로를 찾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고 경찰에 실종 사실을 신고하는 등 노력해왔다. 경찰청 실종가족지원센터는 3월 진 씨의 실종 발생 개요 등을 토대로 가족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형식 씨를 발견했고, 외교행낭으로 캐나다에서 형식 씨 유전자를 받아 1:1 대조를 통해 삼남매의 재회를 도왔다.

경찰에 따르면 2004년부터 장기 실종자를 찾기 위해 도입된 ‘유전자 분석제도’를 이용한 사람은 3만8000여명 수준이다. 임희진 경찰청 실종정책계장은 “연평균 20쌍 정도의 가족이 이 제도를 통해 재회한다”고 전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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