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 위해 살겠다더니…” 끝내 못 돌아온 김동식 구조대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쿠팡 물류센터 화재 진압중 순직
소방복 입고 달려온 30년 친구 눈물
“나를 소방관으로 이끈 친구인데…”

“저를 소방관으로 이끈 친구예요. 소방복 입는 것에 자부심이 넘치던 그 친구가 부러워서 저도 소방관이 됐습니다.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친구죠. 항상 제 몫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챙겼어요.”

경기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진압에 나섰던 경기 광주소방서 김동식 119구조대장(53·소방령·사진)이 숨진 채 발견된 19일, 그의 ‘30년 지기’ 친구는 김 대장의 빈소에서 이렇게 말했다. ‘28년 차 소방관’인 김 대장은 17일 화재 직후 물류센터 내부에 혹시라도 남아 있을 인명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가 끝내 나오지 못했다. 김 대장은 실종 이틀 만에 건물 지하 2층 입구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유해로 발견됐다.

19일 오후 경기 하남시의 마루공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서 만난 김 대장의 친구 송성환 광주소방서 소방패트롤팀장(53)은 “어렸을 때부터 한동네에서 3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행정직으로 근무하는 송 팀장은 17일 김 대장이 건물 안에 고립됐다는 긴급문자를 받고 한동안 입지 않았던 소방복과 산소호흡기를 챙겨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러곤 소방서장에게 “제발 안으로 보내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센 불길과 붕괴 위험 때문에 진입은 불가능했다. 송 팀장은 “동식이는 평생 남을 위해 살겠다더니 정말 그 말처럼 살다 갔다”며 울먹였다.

“비상시엔 휴일도 반납… 자기 목숨보다 현장 챙긴 원칙주의자”

故 김동식 구조대장 빈소 “말보다 행동 앞장선 진짜 대장님”
후배-동료들 추모 발길 이어져
文대통령 “굳건한 용기 기억하겠다”…경기도, 1계급 특진-녹조훈장 추서
21일 광주시민체육관서 영결식


고사리손으로 쓴 추모 편지 20일 경기 하남시 마루공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경기 광주소방서 김동식 119구조대장(53·소방령)의 빈소에 어린이 조문객이 남긴 손편지가 놓여 있다. 편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목숨 바쳐 저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김 대장은 17일 경기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인명 수색 작업을 하다 실종돼 이틀 만에 유해로 발견됐다. 하남=사진공동취재단
고사리손으로 쓴 추모 편지 20일 경기 하남시 마루공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경기 광주소방서 김동식 119구조대장(53·소방령)의 빈소에 어린이 조문객이 남긴 손편지가 놓여 있다. 편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목숨 바쳐 저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김 대장은 17일 경기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인명 수색 작업을 하다 실종돼 이틀 만에 유해로 발견됐다. 하남=사진공동취재단
“대장님은 원칙주의자였어요. 고지식할 정도로 자기 목숨보다 현장의 대원들을 챙겼습니다. 1년 반을 함께하면서 대장님의 그런 원칙도 구부러질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제가 그분처럼 바뀌었네요.”

20일 오전 경기 하남시의 마루공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동식 경기 광주소방서 119구조대장(53·소방령)의 빈소에서 함재철 구조3팀장(49)은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함 팀장은 지난해 1월부터 김 대장과 함께 구조대원으로 근무했다. 함 팀장은 비상 상황이 생기면 휴일도 반납하고 현장으로 출근하는 김 대장의 근무 방식이 때로는 버겁게 느껴졌다고 한다. 구조대장 업무를 1년 정도 하면 그런 원칙이 조금은 느슨해질 줄 알았는데 김 대장은 변함이 없었다.

함 팀장은 “처음엔 대장님의 업무 스타일이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아무리 위험한 현장에서도 대장이 맨 앞에서 진두지휘하다 보니 부하 대원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함 팀장은 “대장님처럼 매 순간 앞장서는 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이제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한 달 전쯤 대장님한테 함께 근무하며 느꼈던 제 속마음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곧바로 제게 이런 문자를 보내셨어요. ‘내가 너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앞으로 우리 더 소통하자’라고. 이 짤막한 문장에서 대장님이 대원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느껴지더군요.”

함 팀장 외에도 김 대장의 빈소를 찾아온 후배들은 고인을 향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다. 빈소는 김 대장의 생전 마지막 근무지였던 광주소방서 직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동료들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던 사람”이라고 김 대장을 회상했다.

휴일에도 현장 지휘 경기 광주소방서 김동식 119 구조대장(점선 안)이 지난달 광주시 광동교 인근에서 대원들과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경기 광주소방서 제공
휴일에도 현장 지휘 경기 광주소방서 김동식 119 구조대장(점선 안)이 지난달 광주시 광동교 인근에서 대원들과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경기 광주소방서 제공
김 대장은 지난달 경기 광주시 광동교에서 투신한 실종자를 찾기 위해 휴일에도 현장을 찾아왔다고 한다. “대원들만 위험한 현장에 둘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날 김 대장은 수색용 보트에 올라 현장을 지휘했다. 김 대장과 1년 넘게 같은 팀에서 근무했던 동료 박모 소방관은 “단 한 번도 후배에게 일을 미루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26년 전 첫 사수로 김 대장과 인연을 맺은 조우형 광주소방서 119구급대장(50)은 “김 선배가 나에겐 교과서였다”고 했다. 당시 김 대장은 2년 차 소방관으로, 조 대장보다 1년 반 먼저 임용된 선임이었다. 조 대장이 소방관이 된 지 25일째 되던 날 두 사람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 현장에 함께 출동했다. 김 대장은 현장에서 사망자를 본 적이 없는 초보 소방관이던 조 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현장을 많이 볼 테니까 침착하게 잘해야 한다. 오늘은 처음이니까 현장엔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대기해.”

조 대장은 김 대장에 대해 “원칙을 지키면서도 늘 후배들을 생각하는 선배였다. 현장에서도 절대 뒤로 빠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앞장서서 동료와 후배들의 안전을 확보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1994년 경기 고양소방서 원당소방파출소에 임용된 김 대장은 지난해 1월부터 광주소방서 119구조대장을 맡아 근무해왔다. 소방행정유공상, 경기도지사 표창 등 네 차례 수상 이력이 있을 정도로 타의 모범이 되는 소방관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추도문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향한 여정에서 언제나 굳건한 용기를 보여준 고인을 기억하겠다”고 했다. 경기도는 김 대장에게 1계급 특진과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21일 오전 9시 30분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으로 거행된다. 영결식엔 유가족과 동료 소방관 등 90여 명이 참석한다.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하남=김수현 newsoo@donga.com / 이소연 기자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김동식 119구조대장#광주소방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