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수사기관 존재 이유 스스로 부정한 공수처… 잇단 거짓해명 논란

이태훈기자 입력 2021-04-07 11:58수정 2021-04-0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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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고위공직자 수사에 있어 최고 수사기관으로서의 위상과 권한을 부여받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주요 사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뒤집거나 거짓 해명 논란을 자초해 ‘신뢰 위기’를 맞고 있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도 공식 석상에서는 공수처 운영 방향에 대해 흠 잡을 데 없는 방침을 천명해 놓고서는 정작 실제 운영은 말과 다르게 한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황제 조사’ 논란과 관련해 공수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3월 5~7일 이 지검장 등에 대한 공수처 출입 기록’을 요구한 데 대해 지난달 19일 “(공수처가 있는) 과천청사 5동 출입기록은 정부청사관리본부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답변을 제출했다.

하지만 과천청사관리소는 2일 공수처 설명과는 반대되는 입장을 냈다. 공수처에 출입하는 일반 민원인은 과천청사관리소에서 기록을 관리하지만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 관계자의 출입기록은 공수처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공수처설립추진단과 이미 협의해 그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공수처에 온 이 지검장의 출입기록도 공수처가 관리한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거짓 답변 논란이 일자 공수처는 “실수였다. 이후 국회에 보낸 공문에는 바로잡았다”고 해명하면서도 이 지검장의 출입기록에 대해서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공개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3월 5~7일 공수처 출입기록을 요구한 것은 일요일인 3월 7일에 김 처장이 이 지검장을 공수처에서 면담조사를 했다는 날이기 때문이다. 청사 외부로 나온 공수처장의 제네시스 G90 관용차에 이 지검장이 타고, 내리는 폐쇄회로(CC)TV 화면이 공개되면서 피의자 신분이면서 검찰 조사에 불응하고 있던 이 지검장을 공수처가 몰래 에스코트했다는 ‘황제 조사’ 논란이 불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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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장 관용차를 청사 외부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거짓 해명 의혹이 일었다. 공수처는 “공수처가 보유한 관용차가 2대 뿐이고, (공수처장 관용차 외에) 나머지 한 대는 뒷좌석 문이 열리지 않는 체포 피의자 호송 차량이어서 (처장 관용차를 보낸 것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공수처 공용차량 운영 규정’에 따르면 체포·구속 등 범죄수사 활동을 위한 차량의 차종은 ‘승합’으로 규정돼 있다. 처장 관용차 외에 나머지 한 대인 쏘나타 차량은 뒷좌석 문이 열리지 않는 피의자 호송 차량이 아닌 업무용인 것이다.

거짓 해명 논란에 대해 공수처는 “출범 초기라 승합차를 아직 구비하지 못했다. 2호 차량(업무용 쏘나타)의 경우 현재 호송용으로 임시로 쓰는 것은 맞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임시 호송용으로 사용한다는 쏘나타 차량의 뒷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밖에서 열어주면 된다는 점에서 공수처 해명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욱 공수처장. 동아일보 DB
김 처장은 또 지난달 7일 이 지검장을 공수처 회의실에서 면담하면서 영상녹화를 하지 않고 진술조서도 남기지 않았는데, 이는 “공수처의 조사는 개방형 조사실에서 모든 과정을 영상녹화 방식으로 하겠다”는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과도 배치된다. 공수처는 김 처장과 이 지검장 면담 과정과 관련된 폐쇄회로(CC)TV 영상 일체를 제출하라는 검찰의 요구에 면담이 이뤄진 회의실 복도가 찍힌 CCTV 영상을 6일 보냈다. 공수처는 회의실로 쓰이는 342호실 내부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아 영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장 관용차를 외부로 보내 이 지검장을 은밀하게 데려오면서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한 점, 면담조사를 했다는 곳이 영상녹화 시설이 있는 일반 조사실이 아닌 회의실인 점, 면담조사에서 진술조서 없이 일시, 장소, 면담 참여자만 기록한 수사보고서만 남긴 점 등에 비춰볼 때 정상적인 피의자 조사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살아 있는 권력’을 감시한다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특히 김 처장과 이 지검장의 면담이 이뤄진 지난달 7일은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및 수사무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형사3부장)이 지난달 3일 이 지검장과 이규원 전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 등 2명에 대한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 수사 관할권이 공수처에 있던 시기였다. 공수처 외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범죄 혐의를 발견할 경우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해야 한다는 공수처법 25조 2항에 따른 결정이었다.

당시 이 지검장은 검찰의 이첩 직후 입장문을 내 “검찰로 재이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 2월에는 3차 출석 통보를 받은 직후 이 사건의 수사권이 공수처에 있다며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재직 시절인 2019년 6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수사 중이던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를 중단하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자기 사건을 공수처에서 수사해야 한다고 이 지검장이 줄곧 주장해 왔는데, 사건이 공수처로 이첩(3월 3일)된 지 4일 뒤에 문제의 면담조사가 이뤄진 것이다.

김 처장과 이 지검장 면담(3월 7일)이 있은 지 5일 뒤인 3월 12일 김 처장은 수사팀조차 구성하지 못한 공수처의 상황 등을 이유로 이 지검장 등 현직 검사 2명의 사건에 대해 검찰 이첩을 결정했고, 현재 수원지검 수사팀이 계속 수사를 벌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 등으로 차기 검찰총장 후보 0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이 지검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떻게 결론 날지 주목된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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