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5년간 도피 도운 20대 장애여성의 딱한 사연…“스톡홀름 증후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1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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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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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지적장애 여성의 도움을 받아 5년 동안 도피생활을 해온 조직폭력배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 장애 여성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조폭에게 심리적인 공감과 연민의 정을 느낀 ‘스톡홀름 증후군’을 앓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후배 조폭들을 둔기로 때려 상처를 입힌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폭력조직 행동대원 A 씨(32)를 구속했다고 21일 밝혔다.

A 씨는 2015년 4월경 후배 조폭 3명이 조직을 탈퇴하고 경쟁 조직에 가입하자 광주 동구의 한 호텔 인근 야산으로 불러낸 뒤 둔기로 무차별 폭행했다. A 씨의 폭행으로 후배 조폭 3명은 각각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A 씨는 전남 지역의 중소 도시를 돌며 도주 생활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2016년 한 유흥업소에서 선불금 1200만 원을 받은 후 일을 하지 못하던 B 씨의 처지를 알게 됐다. A 씨의 지인이자 B 씨의 전 남자친구였던 30대 C 씨는 선불금 1200만 원을 유흥비로 탕진한 뒤 행방을 감춘 상황이었다. A 씨는 B 씨에게 유흥업소 업주를 상대로 선불금 변제 공증각서를 쓰게 했다. B 씨에게 “성매매를 해서 돈을 갚으며 된다”고 꼬득인 것이다.

A 씨는 이후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으로 성매수 남성을 접촉한 뒤 차량으로 B 씨를 성매매 장소로 이동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A 씨는 매달 B 씨가 성매매를 통해 받은 1000여 만 원을 챙겼다. A 씨는 B 씨가 5년 동안 성매매를 통해 받은 돈 전부를 관리했다. 하지만 A 씨는 B 씨의 선불금 1200만 원은 갚지 않았다.

A 씨는 B 씨에게 받은 돈을 자신의 연인을 포함해 3명의 공동 생활비와 도피자금으로 사용했다. A 씨 등 3명은 경찰추적을 피하기 위해 울산, 전주 등 전국 무인 텔을 떠돌았다. 또 다른 사람의 명의로 휴대전화 5대, 차량 2대를 사용했다. 수시로 휴대전화 번호와 차량을 바꿀 정도로 지능적이었다.

경찰은 A 씨의 연인 20대 여성을 범인도피혐의로, 그리고 B 씨를 성매매특별법위반 혐의로 함께 입건했다.

A 씨가 17일 경찰에 검거될 당시 B 씨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A 씨는 경찰조사에서 “B 씨는 가족보다 더 가깝고 믿는 관계”이라고 주장했다.

B 씨는 경찰조사를 받을 때 울다가도 A 씨가 “그만 그쳐라”고 하면 바로 울음을 멈췄다. 중학생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진 B 씨는 사실상 가족이나 거처할 집조차 없는 처지다.

경찰은 B 씨는 A 씨가 자신을 이용하는 줄 알면서도 함께 도피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여성단체에 B 씨의 보호를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B 씨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각종 심리치료와 지원을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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