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청소년 320만 명이 치매 노인 돕는 교육 받아


일본에서는 세상이 바뀌어도 과거 전통을 존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노인들의 삶의 방식과 첨단 정보화 사회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가령 종이 신문의 경우 판매 부수가 줄었다고는 해도 아직 요미우리신문 800만, 아사히신문 550만의 구독자를 자랑한다.
이 신문들을 펼치면 노년층을 겨냥한 전면 광고를 적잖이 만날 수 있다. 도심에 마련된 장묘시설, 지역별 노인홈(양로원), 노인용품(요실금용 팬티나 안티에이징 화장품, 노인에게 필요한 각종 아이디어 상품들), 다양한 메뉴로 구성된 배달도시락 세트. 흘러간 옛 노래 CD선집 등이 큼지막한 주문 전화번호와 함께 게재돼 있다. 신문들이 수백만 부씩 팔리다보니 광고 게재료도 비싸기로 유명하다. 이들 업체가 회당 수 천 만원의 전면광고를 낼 정도로 매출을 올린다는 얘기다.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던 2018년 경 주일한국대사관에서 개최한 한일 저출산 고령화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일이 있다. 청중으로부터 기자로서 저출산 고령화와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질문을 받았는데 일본발 뉴스 대부분이 저출산 초고령 사회의 특징을 보도하는 것이 되더라고 개인적 감상을 말한 적이 있다.
가령 거리에 노인이 늘어나고, 노인들이 내는 교통사고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다. 일손이 부족하니 기업들은 구인난에 빠지고 정년은 연장된다. 일손 부족은 다른 한편으로 업무 효율화나 노동생산성 강화를 부르는데,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젊은이들과 똑같이 일해야 하는 노인들 중 일부는 허덕대는 걸로 보였다.
100세 전후 할머니들이 쓴 책이 서점가에서 속속 베스트셀러가 됐다. 독자층은 롤 모델을 책에서 구하는 60대 여성들이다. 출판사들이 “80대는 너무 젊다”며 100세 전후의 신진작가를 찾아 헤매는 현상도 생겨났다. 과거 터부시되던 죽음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하고 주체적인 태도로 삶의 마감을 준비하는 활동이 공론화하는가 하면 ’안락사‘ 합법화를 주장하는 유명작가도 나타났다.

’이온‘이라는 대형 유통업체에서는 매년 전국을 순회하며 ’슈카쓰 페어‘를 개최했다. 현장에서는 장례식 준비 패키지부터 묘지, 납골당, 상속 증여 기부 등 세무 상담과 보험, 독거노인들의 법적 후견인 상담, 짐으로 가득 찬 노인의 집을 청소해주는 서비스까지 실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소개됐다.
여기에 상혼이 끼어들면 보석이 박힌 유골함이나 우주에 쏘아 보내 산골(散骨)하는 우주 장례식 등 각종 아이디어들이 등장한다. 장례 비즈니스 관련 산업을 총망라한 ’라이프 엔딩 산업전‘이 매년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리는데 올 6월에도 행사가 예정돼 있다.
여론조사 등에서는 상당수 노인이 익숙한 곳에서 최후를 맞고 싶다고 답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재택의료 시스템 점검이 한창이다. 사실 이는 인구 구조상 2025년 경 사망자가 급속히 늘어 죽을 곳을 찾지 못하는 ’임종 난민‘이 생겨날 것이라는 현실적 이유가 바탕에 깔려 있기도 하다(각 움직임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고령화로 치매 환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도 현실적인 과제다. 치매는 60대 후반에 3%, 80대 후반에서는 40%, 95세 이상에서는 80% 가량 나타날 정도로 나이가 들수록 발병 확률이 높다. 일본의 치매 환자는 2025년에는 약 7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사회는 치매에 대한 자세를 공존과 포용으로 바꾸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대처하자는 것이다. 우선 2005년부터 호칭을 ’인지증(認知症)‘이라 바꿨다. ’미치고 어리석다‘는 뜻의 한자어인 치매(癡¤)는 차별적 단어인 데다 치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준다는 이유다. 또 이때를 계기로 ’인지증 서포터‘ 제도를 도입해 치매를 제대로 이해하고 어려움에 처한 환자를 돕자는 캠페인에 나섰다.
인지증 서포터 자격증은 치매를 이해하고 환자에게 접근하는 자세를 배우는 90분짜리 강의를 들으면 받을 수 있다. 가령 ’(환자를) 놀라게 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자존심에 상처주지 않는다‘는 등의 구체적인 대응책을 배운다. 자격증 소지자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13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중 10대가 325만 명에 이른다. 자격증과 함께 받은 오렌지색 팔찌(사진)는 치매 환자를 돕겠다는 의사 표시로 눈에 띄는 곳에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 권장된다.

이런 노력들은 조기 대응이나 치료로 연결되기도 한다. 고령자가 32.6%에 달하는 후쿠이(福井) 현의 한 마을은 인구 1만5000명 중 1만2000명이 강좌를 수강한 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한다. 서포터들이 모임을 만들고 상담 창구 역할을 하면서 “같은 물건을 몇 번이나 사가는 사람이 있다”거나 “길을 헤매는 할머니가 있다”는 정보들을 공유한다. 집안에 치매 환자가 생기면 쉬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웃들에게 “혹시라도 우리 아버지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좀 알려 달라”고 마음 편하게 부탁하게 됐다.
치매와 공존한다는 철학은 세상을 많이 바꿔놓았다. 2017년에는 일본 최고의 알츠하이머 전문의 하세가와 가즈오(長谷川和夫·당시 88세) 박사가 본인이 치매라고 공표했다. 그는 이후로도 병세의 진전 상태를 공개하고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 응했다. 마치 환자와 그 가족에게 “괜찮아. 나도 있잖아”라고 위로하는 마음을 한 조각 나눠주려는 것 같았다.

기사가 나간 몇 달 뒤, 사무실로 새로 나온 어린이용 그림책이 배달됐다. 저자는 하세가와 박사다. 치매로 점차 가족도 못 알아보게 되고 일상이 힘들어져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런 할머니에게 코흘리개 손자가 말하는 장면이 마지막 페이지에 담겼다. “할머니가 우릴 알아보지 못해도 괜찮아. 우리가 할머니를 알아보면 되지. 우리가 할머니를 지켜줄게.”
2017년 6월 도쿄에 흥미로운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간판을 건 임시 음식점인데 여섯 명의 치매 노인이 서빙을 담당했다. 햄버거를 주문하면 만두가 나오고 오렌지주스를 주문하면 콜라가 나오기도 했지만 손님들은 “주문과 달라도 맛만 있으면 된다”며 유쾌해 했다. 일본 전역에서 ’오렌지 살롱‘이라 불리는 치매 카페 수백 곳이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치매 환자들이 한 달에 2번 직접 일하며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사랑방‘이다.
한국에서는 세련되고 고급스런 이미지를 가진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치매 카페가 열리기도 한다. 도쿄 외곽 지역인 마치다(町田)시의 한 매장 점장이 3년 전 시작했다. 매달 하루 날짜를 정해 치매 당사자나 가족 등 관심을 가진 사람 누구라도 커피 한잔 값(290엔)에 모여 대화할 기회를 갖는다. 치매를 앓는 환자 본인도 가족도,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이들이 느끼는 고립감을 덜고 사회적인 연결망을 확인해주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스로 도우려는 노력과 이를 북돋는 사회의 지원이 맞물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간다.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의 추계에 따르면 인지증 진단을 받은 사람은 2015년 기준으로 세계에 4700만 명. 2050년에는 1억3000만 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한국은 고령화율 7%(2000년)인 고령화 사회에서 14%(2017년)인 고령 사회에 이르는 데 불과 17년이 걸렸다. 1970년부터 1994년까지 24년 걸린 일본보다 빠르고 프랑스의 114년, 스웨덴의 82년, 미국의 69년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다. 앞으로 고령자만큼이나 치매 환자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
서영아 기자 sya@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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