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푸틴 대통령의 ‘눈엣가시’ 나발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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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게 하라. 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진리를 향한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다.”

출판물을 통제하려던 영국 왕실의 면허령에 대한 존 밀턴(1608∼1674)의 반박문 ‘아레오파지티카’(1644년)에 나오는 글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칼 포퍼(1902∼1994)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합리적 토론이 가능한 열린 사회를 갈망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열린 사회에서는 지배자를 비판할 권리도 자유의 영역입니다. 이와 달리 닫힌 사회에서는 지배자 비판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4·사진)의 탐사보도 영상물 ‘푸틴의 성(城): 역사상 최대 뇌물의 역사’가 일으킨 파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흑해 연안 휴양도시인 겔렌지크에 있는 거대한 저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것이라고 폭로한 겁니다. 그는 비행금지 구역으로 접근이 제한된 이 저택이 푸틴 대통령의 부패 자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발니는 그간 자신이 이끄는 반부패재단(FBK)을 통해 러시아 고위 공직자와 기업인의 부정부패를 폭로했습니다. 이번 영상에는 원형극장, 아이스링크, 헬기장, 카지노, 사우나 등을 갖춘 호화로운 저택 내부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지난달 19일 유튜브 계정에 영상이 올라온 이후 조회 수가 1억 건을 넘어섰습니다.

푸틴 대통령에게 나발니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지난해 8월 나발니가 독극물 중독으로 혼수 상태에 빠졌을 때 푸틴의 암살 기도설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그 진실은 오리무중입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치료를 받고 지난달 17일 귀국한 나발니는 공항에서 곧바로 체포됐습니다.

나발니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분노는 점점 커졌습니다. 지난달 23일 러시아 당국의 집회 불허와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11만 명이 넘는 군중이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최대 반정부 시위라고 합니다. 이들은 ‘나발니 석방’, ‘푸틴 사퇴’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대규모 집회 발생 이후 러시아 수사당국은 나발니의 동생 올레크 나발니와 그의 측근 등 5명을 체포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을 무시하고 시위를 강행했다는 이유입니다.

푸틴은 지난달 25일 나발니가 공개한 영상물 내용을 부인했습니다. 러시아 기업인 아르카디 로텐베르크는 지난달 30일 자신이 이른바 ‘푸틴 궁전’의 실소유주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푸틴과 로텐베르크의 말이 맞는다면 나발니는 가짜 뉴스 유포자에 불과하겠지요. 하지만 나발니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푸틴과 로텐베르크의 행위는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까요.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는 시대일수록 자유로운 담론은 소중합니다. 존 밀턴과 칼 포퍼가 갈망한 열린 사회의 힘을 믿고 싶습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푸틴#나발니#눈엣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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