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벽과 철제펜스로 막힌 길…한글날, 미로가 된 광화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9일 21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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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인 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 경찰이 차벽 등을 설치하고  집회와 차량시위가 강행될 상황에 대비해 곳곳을 통제하고 있다.
한글날인 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 경찰이 차벽 등을 설치하고 집회와 차량시위가 강행될 상황에 대비해 곳곳을 통제하고 있다.
한글날인 9일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등 서울 도심에는 보수단체의 집회를 막기 위해 경찰 버스로 만든 차벽이 개천절에 이어 다시 등장했다.

경찰은 주요 길목을 차량과 펜스 등으로 모두 막고, 서울 시내에 57곳의 차량 검문소를 설치해 교통을 통제했다. 휴일 도심 이동을 제한받은 시민들은 도보에서도 목적지와 신분 등을 묻는 경찰의 불심 검문이 잇따르자 불편함을 호소했다. 집회금지를 통보받은 보수단체는 대규모 집회 대신 서울 시내 곳곳에서 기습 기자회견과 1인 피켓시위, 자전거시위 등을 열어 정부를 규탄했다.

● 차벽과 펜스, 불심검문에 시민들 불편 호소
서울지방경찰청은 9일 새벽부터 경찰버스 400여대를 동원해 광화문 누각에서 시청광장까지 주요 도로 진입을 막기 위해 차벽을 설치했다. 차벽 너머에는 미로 같은 철제 펜스를 촘촘히 놓아 시민들의 출입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3일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주변을 모두 둘러쌌던 ‘경찰버스 차벽’ 대신 철제 펜스로 대신했다. 광화문역은 광화문광장 쪽으로 나가는 출입구 7개를 개천절 때와 똑같이 차단벽을 내려 출입을 원천 봉쇄했다. 차벽과 펜스의 주변에는 경찰 경력 약 1만 1000명을 배치해 집회 참석하려는 시민들의 집합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경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보수단체 등이 한글날 신고한 집회 1220건 가운데 10인 이상이거나 금지구역에서 신고한 139건에 대해서 금지를 통고했다. 대규모 집회가 모두 금지됐지만 일부 단체에서 집회 강행을 예고해 집합 자체를 막기 위한 것이다. 경찰은 우려했던 보수단체의 집회 움직임이 없자 오후 2시를 전후해 차벽을 해제했다. 또 보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했다.

하지만 경찰관의 불심 검문으로 인한 통행 불편과 영업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청계천 나들이를 나왔다는 김미경 씨(48)는 “휴일을 맞아 나왔는데 길을 건널 때마다 ‘무슨 목적으로 왔냐’고 경찰관들이 달라붙어 신원을 물어와 매우 불쾌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권일원 씨(26)는 “부모 세대가 겪었다는 불심검문을 처음 당해봤다”고 했다. 시청역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 씨(55)는 “출입을 통제해 아예 가게 인근으로 지나다닐 수가 없게 막으니 평소보다 손님이 5배는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했다.

● 피켓시위, 기자회견, 자전거 시위로 정부 비판
경찰이 금지한 대규모 집회 대신 서울 곳곳에선 기습 기자회견과 자전거시위, 1인 피켓시위 등이 열렸다. 광화문 인근에서 2000명 규모의 집회를 열려다 금지 통고를 받은 ‘8.15 시민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인근에 “집회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주요 수단 중 하나”라며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국민의 장치가 집회·결사의 자유인데, 이 수단이 법원의 정치 판결로 인해 종말을 고했다”고 했다.

사랑제일교회 등이 참여하는 ‘8·15 광화문 국민대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서대문구 독립문과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집회금지 조치는 과도한 공권력 행사”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하겠다며 막아서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등에서는 보수단체의 기습적인 자전거 시위가 열렸다.

한성희 기자 chef@donga.com
박종민 기자bli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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