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전환 9년 만에 ‘지정 취소’ 휘문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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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7월 9일 1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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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휘문고등학교.(휘문고등학교 제공)© 뉴스1
서울 강남구 휘문고등학교.(휘문고등학교 제공)© 뉴스1
서울 강남구 휘문고등학교가 학교법인 관계자들의 조직적인 회계 부정으로 인해 지난 2011년 자사고 지정 이후 9년 만에 다시 일반고로 전환될 위기에 놓였다. 전국 특목고·특성화중 가운데 회계 부정 문제로 ‘지정 취소’ 처분을 받은 최초의 학교라는 멍에를 썼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오는 2025년이면 전국 자사고·국제고·외국어고 등이 일반고로 일괄 전환될 예정이지만, 서울시교육청은 휘문고의 회계 부정 문제가 심각해 이에 앞서 교육감 직권으로 지정 취소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은 9일 휘문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을 내리고 학교 측에 이에 따른 청문실시통지서를 발송했다. 학교 측 입장을 소명하는 청문은 오는 23일 진행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후 교육부에 동의를 신청하고 승인되면 내년부터 휘문고를 일반고로 전환할 계획이다.

휘문고는 전국 특목고·특성화중 가운데 운영성과 평가(재지정 평가) 기준 미달이나 학교의 자발적 전환 신청이 아닌 이유로 지정 취소 처분을 받은 첫 학교가 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모두 9곳의 자사고에 대해 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는데 이 가운데 8곳은 재지정 평가 미달, 1곳은 학교 신청에 따른 결과였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교육감은 Δ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회계를 집행한 경우 Δ부정한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한 경우 Δ교육과정을 부당하게 운영해 지정 목적을 위반한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Δ지정 목적 달성이 불가능한 사유 발생으로 학교의 신청이 있는 경우 등에 한해 특목고·특성화중 등에 대한 직권 취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휘문고의 발목을 잡은 것은 학교 핵심 관계자들의 회계 부정 관련 범죄 행위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모자 관계인 휘문고 학교법인 휘문의숙의 김모 전 명예이사장과 민모 전 이사장, 그리고 이들의 손발 역할을 한 박모 전 법인사무국장 등은 지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40억이 넘는 학교 공금을 횡령해 개인적으로 유용했다.

명예이사장은 법인사무국장과 공모해 지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6년 동안 인근 한 교회에 학교 체육관과 운동장을 빌려준 대가로 사용료를 징수하고 6차례에 걸쳐 학교발전기탁금을 받는 등 모두 38억2500만원을 학교회계와 무관한 계좌로 입금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이사장도 이같은 행위를 알고도 방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명예이사장은 법인카드 사용 권한이 없는데도 2013년부터 5년간 2억4000여만원을 ‘묘소 관리비’ ‘유흥주점 이용’ 등 개인 용도로 사용했으며 카드 대금 일부를 학교회계에서 지출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회계에 포함돼야 할 38억여원의 돈을 다른 통장으로 받은 다음 현금과 수표로 전액 인출하고 계좌를 폐쇄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법인사무국장의 경우 체육관 수리비 등 명목으로 교회로부터 2000만원을 개인 통장으로 받아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 감사관실은 휘문고에 대해 지난 2018년 민원감사와 종합감사를 시행해 이같은 회계 부정 사실을 확인했지만,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지 않아 지금까지 지정 취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4월9일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서 이사장과 법인사무국장이 각각 징역 4년의 실형을 확정받으면서 내부 논의를 거쳐 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명예이사장은 1심 선고 전 사망해 공소가 기각됐고, 학교 관계자들과 결탁해 보증금 횡령 등 부정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건설업체 관계자 2명은 상고를 포기해 형 집행 중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법조인들에게 자문해 ‘명백한 회계 부정이 발견돼 교육감 직권 취소를 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현재 남은 자사고들이 2025년이면 일반고로 전환되겠지만 이처럼 부정이 심각한 학교를 그때까지 유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미 대법원이 휘문고 회계 부정에 대한 판결을 내놓은 만큼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도 지정 취소 결정에 동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휘문고 측이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지정 취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적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만약 휘문고에서 가처분 신청을 내고 법원이 이를 인용한다면 자사고 지위가 유지될 것”이라면서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사안이라 법원이 인용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휘문고 회계 부정 의혹이 불거진 이후 지속해서 지정 취소를 촉구해 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조연희 서울지부장은 “회계 부정의 증거가 명확해 이미 지정 취소가 됐어야 마땅하지만 늦게라도 이같은 결정이 나온 데 대해 환영한다”며 “명백한 부정이 드러난 만큼 휘문고는 법적 대응으로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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