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못뵈어도, 사랑합니다 선생님” 랜선으로 전하는 감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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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스승의 날’ 새 풍속
“전염병이 情까지 막을순 없죠”… 카네이션-손편지 찍어 올려
현관에 ‘편지 벽보’ 깜짝 선물… 출근하던 교사들 눈물 글썽
내년 정년퇴임 앞둔 39년 교사… “마지막 제자들 빨리 만났으면…”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경기 성남시 운중중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성남=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경기 성남시 운중중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성남=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39년 교사 인생에서 마지막 제자들인데…. 아직 얼굴도 못 봤네요.”

서울 광진구의 한 고등학교에 있는 교실. 수학 교사인 박성우 씨(61)는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텅 빈 책상들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 23세에 부임해 평생 교직에 몸담은 박 씨는 내년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이맘때면 받던 감사편지나 스승의 날 노래는커녕, 학생 한 명 없는 교실은 적막했다. 박 교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3개월째 원격수업만 진행하고 있다”며 허전해했다.

○ “언제쯤 아이들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박 교사는 매일 다른 동료들처럼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온라인 출석을 체크하는 일로 일과를 시작한다. 일단 강의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은 학생들을 챙겨 전화를 걸어준다. 그 뒤 학습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사이트에 띄우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금방 하루가 간다.

“오히려 할 일은 코로나19 이전보다 훨씬 많아요. 몸은 무척 바쁜데, 마음은 갈수록 허전합니다. 전화로 제자들 목소리를 들으면 그마나 위로가 되긴 하는데…. 수화기 너머 아이들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고 또 보고 싶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또 다른 연례행사도 취소해야 했다. 해마다 찾아오는 졸업생들의 방문이다. 부임 초기에 가르쳤던 제자들은 벌써 50대. 함께 둘러앉아 식사할 때면 애틋하고 뿌듯했다. 하지만 결국 이마저도 사양해야 했다. 박 교사는 “저야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지만 혹시라도 재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느냐. 그럼 또 개학이 늦춰질 텐데…”라고 했다.

올해 처음으로 교단에 서는 ‘새내기 교사’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처음 부임한 김모 교사(25)는 “수년을 기대해왔던 순간인 만큼 아쉬움도 크다”고 했다. 실은 그는 박 교사의 제자이기도 하다. 8년 전 가르침을 받으며 교사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올해 김 교사가 맡은 건 4학년. 적막한 교실을 둘러보다 책상 위에 올려둔 아이들의 이름표를 어루만졌다. 아이들을 만날 기대에 다 자신이 손수 만들었다.

“원래 어버이날 이전엔 개학이 될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과 종이 카네이션을 접으려고 색종이도 여러 장 사뒀는데, 다 쓸모가 없어졌네요. 해맑은 미소까진 바라지 않고…. 마스크 쓴 얼굴이라도 마주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 손편지 찍어 인터넷 올리는 ‘랜선 감사’

11일 오전 7시경 대전 대덕구에 있는 대양초등학교 현관 앞에 붙은 아이들의 손편지와 풍선. 이 학교 학생들과 가족봉사단은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대면 접촉이 어려운 교사들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다. 강윤희 씨 제공
11일 오전 7시경 대전 대덕구에 있는 대양초등학교 현관 앞에 붙은 아이들의 손편지와 풍선. 이 학교 학생들과 가족봉사단은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대면 접촉이 어려운 교사들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다. 강윤희 씨 제공
하지만 마음은 어디에 있어도 이어진다. 코로나19에도 스승과 제자의 ‘정’이 완전히 가로막히진 않았다. 몇몇 학생은 최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스승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랜선 감사’다.

경남 남해에 있는 고등학교에선 같은 반 학생 30여 명이 ‘온라인 릴레이 손편지’를 썼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등의 문구를 적은 편지를 써서 사진으로 찍은 뒤 인터넷카페 게시판에 올리고 있다.

카네이션 사진과 편지를 올리거나 동영상으로 감사를 전하는 모습도 온라인에 늘고 있다. 고교 시절 은사에게 쓴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소셜미디어로 전한 대학원생 김예일 씨(25)는 “선생님이 내년에 정년퇴임을 하신다. 현직에 계실 때로는 마지막 기회인데,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선 학생들이 선생님 응원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는 이벤트도 벌였다.

대전 대양초등학교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깜짝 선물로 ‘편지 벽보’와 현수막을 선물하기도 했다. 학부모들로 구성된 가족 봉사단이 11일 새벽에 아이들의 손편지와 풍선, 현수막 등을 학교 현관에 붙여뒀다. 교사들은 출근길 뜻밖의 이벤트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고 한다. 봉사단 부회장인 강윤희 씨(36·여)는 “빈 교실에서 쓸쓸하게 스승의 날을 보낼 선생님들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스승의 날#코로나19#랜선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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