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달라” 비명에 뛰어나가 흉기 괴한과 맞짱…시민영웅 시상

  • 뉴시스
  • 입력 2019년 12월 19일 14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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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브리지, 행안부와 '참 안전인 시상식' 개최
이병형씨, 여성에 흉기 휘두른 남성 검거 도와
최창호씨, 화재차량 속 의식 잃은 운전자 구조

“밤 12시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밖에서 ‘살려달라’는 다급한 외침이 들렸어요. 창문을 열어보니 한 남성이 바닥에 쓰러진 여성을 흉기로 찌르고 있더라고요. 워낙 긴박한 상황에 머릿속이 텅 비었지만 ‘살려줘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정신없이 뛰어나갔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전국재해구호협회 회관에서 열린 ‘참 안전인 시상식’에서 약 4개월 전 있었던 일을 설명하던 이병형(44)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는 지난 8월30일 창원 마산합포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60대 남성이 여성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상황을 목격하고, 가해 남성을 제지한 뒤 경찰의 검거를 도운 공을 인정받아 올해의 ‘참 안전인’으로 선정됐다.

‘참 안전인 상’은 사고·재난 현장에서 본인의 위험을 무릅쓰고 남다른 희생정신을 발휘해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 의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와 행정안전부가 매년 공동으로 의인을 선정한 뒤 상패와 기념메달, 포상금을 수여하며 올해는 14명이 상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서 만난 이씨는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어나갔는데 남성이 흉기로 여성의 얼굴과 복부 등을 찌르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다가가서 멈추라고 하자 남성이 흉기를 든 채로 도망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씨와 흉기를 든 남성은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약 600~700m의 추격전을 벌였다. 이씨는 물리적 충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쫓아가면서 “칼을 버려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면 본인만 후회한다”는 등의 말을 하며 대화를 유도했다.

이씨에 따르면 이 남성은 “한 명을 더 죽여야 된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흉기를 든 채 계속 도망갔고, 이씨가 계속 추격하며 시선을 끈 덕분에 결국 이 남성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혔다.

수술을 무사히 마친 피해 여성은 사고 약 한 달 후 아들과 함께 이씨를 찾아 직접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씨는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인데 뜻깊은 상을 받게 돼서 감사하다”며 “당시에는 경황이 없었지만 얼떨결에 사람 생명을 구하는,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없을 경험을 한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또 있어도 사람이 살려달라고 하면 당연히 뛰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또 다른 참 안전인으로 선정된 최창호(30)씨 역시 사고 현장에서 희생정신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최씨는 지난 2월10일 새벽 서울 성동구 동부간선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불이난 채 방치된 차량 속에서 의식을 잃은 운전자를 들쳐업고, 혹시 모를 폭발을 피하기 위해 약 40m를 달리며 운전자의 목숨을 구했다. 당시 차량에 타있던 운전자는 휴가를 나온 육군 8군단 소속 군인이었다.

최씨는 “새벽 2~3시 사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본네트에 불이 난 차량이 서있었는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며 “안을 확인해보니 운전자가 의식을 잃은 채 앉아있었는데 화재로 인한 열기 때문에 유리에 금이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처음에는 운전석 쪽에 불이 붙어 보조석을 통해 운전자를 꺼내려고 했지만 찌그러진 차량 앞부분에 운전자 다리가 끼어있어 쉽지 않았다”며 “어쩔 수 없이 운전석 문을 열고 의자를 뒤로 당긴 뒤 운전자를 들쳐업고 뛰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당시에는 차가 폭발하기 전에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며 “이후 운전자를 바닥에 눕혀놓고 옷으로 따뜻하게 덮어놓은 뒤 119에 신고했다”고 덧붙였다.

최씨에 따르면 운전자는 국군수도병원에서 수술을 마쳤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이날 참 안전인으로 선정된 것에 대해 “저 말고 다른 대단한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상을 받게 돼서 매우 기쁘다”며 “당시에는 정신없고 무서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스스로 뿌듯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서는 이씨와 최씨를 비롯해 아파트 5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아파트 보일러실 창틀에 매달린 20대 여성을 아래층 베란다를 통해 구출한 양만열(45)씨, 경적이 울리는 채 도로 옆 논으로 추락한 차량을 발견하고 차량 안에 갇힌 운전자를 구조한 유동운(36)씨 등 총 14명이 상을 받았다.

송필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장은 “위험한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본인의 위험을 무릅쓴 의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앞으로도 각종 사고·재난 현장에서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 의인을 기릴 수 있도록 미담 사례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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