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첫 공판…법원 “공소장일본주의 위배”

  • 뉴시스
  • 입력 2019년 9월 30일 11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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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대화 이렇게 자세한 공소사실 본적 없어"
"피고인 인상 나쁘게 보이게 하려 하나" 지적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여 의혹을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가운데 재판부가 검찰을 향해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여지가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에게 선입견을 줄 내용이 공소장에 포함됐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는 30일 오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엔 피고인 출석의무가 없어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보면 실행행위자 박모·정모·김모씨 등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들이 피고인들과 공동정범에 해당하는지 등을 밝혀달라”며 “그리고 이들이 실행행위자이자 공동정범이라면 공소사실을 특정하고 직권남용 혐의와 양립이 가능한지도 밝혀달라”고 주문했다.

또 “공소장에는 피고인들이 박씨를 통해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전모씨의 사표를 제출하게 했다고 돼 있다”며 “박씨의 행위는 피고인들의 범행을 구성하는 본질적 내용인데 박씨에 대한 형법적 평가가 내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아무리 피고인들이 환경부장관이고 청와대에서 근무했다고 해도 상법상 일반 회사 대표이사 임명에 관여한 행위가 (피고인들의) 증거 권한에 속하는지 의심스럽다”며 “확인해 달라”고 검찰에 요청했다.

이와 함께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여지가 분명히 있는 걸로 보인다”며 “공소장에 따옴표가 들어가 있는 부분도 있고 신 전 비서관이 전화를 안 받았다는 내용도 있는데 판사 생활을 20년간 했지만 업무방해죄에 대화 내용이 이렇게 자세히 나온 공소사실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모 전 환경부 차관이 신 전 비서관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전화를 했으나 안 받았다는 부분은 공소사실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피고인의 인상을 나쁘게 보이기 위해 이런 거까지 기재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다음기일까지 수정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검찰에 다음 준비기일까지 공소장을 수정하든지 관련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2차 공판준비기일은 다음달 29일 오전 10시에 진행된다.

김 전 장관은 현직 시절인 2017년 6월부터 다음해 11월까지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명단을 만들어 사표 등의 동향을 파악하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환경부 공무원들을 동원해 합리적 사유 없이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제출하도록 하고, 그 자리에 후임자 임명을 위해 환경부 장관의 인사권 및 업무지휘권 등을 남용한 혐의도 받는다. 김 전 장관은 추천 후보자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하자 담당 공무원을 크게 질책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 전 비서관은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선발 과정에서 청와대 내정 후보가 탈락하자 부처 관계자를 불러 경위를 추궁하는 등 부당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청와대 특별감찰반 시절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등을 주장한 김태우 전 검찰수사관의 폭로로 불거졌다.

김 전 수사관은 지난해 12월 “특감반 근무 당시 환경부에서 8개 산하기관 임원 24명의 임기와 사표 제출 여부가 담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 사퇴 동향’ 문건을 받아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문건에는 사표 제출 여부뿐 아니라 ‘현 정부 임명’, ‘새누리당 출신’ 등 거취가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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