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허벅지로 쑥’ H교수 정직 3개월…한예종 학생들 “징계 아닌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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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9월 24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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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한 뒤풀이 자리에서 H교수가 옆으로 와서 앉더니 내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당황에서 아무런 반항을 못했고,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었다.

# “예전에 자주 가던 술집에서 LP를 틀어줬는데, 가사 중 ‘돌곶이’ 부분에서 판이 튀어서 ‘돌XX(여성의 성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들리곤 했다.” 2018년 해외 워크숍에서 H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이 발언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이런 농담을 했다.

# 2016년 한 수업이었다. H교수가 무선마이크를 직접 채워주겠다는 게 불편해서 내가 하겠다고 했는데 그는 ‘2X세 이하 여자는 내가 직접 달아준다’며 가슴 쪽에 무선마이크를 채웠다. 지금도 무선마이크를 볼 때마다 H교수 생각이 난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 학생들이 성폭력 가해교수로 지목된 영상원 소속 H교수를 파면하라며 캠퍼스 내 집회를 열었다.

H교수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은 학내 대자보를 통해 처음으로 불거졌다. 학교는 논의 끝에 지난 7월 H교수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는데, 학생들은 그의 가해 내역에 비해 징계 수준이 턱없이 낮고 학교가 징계 결정 사유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예종 영상원 학생회는 24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예종 캠퍼스 안에서 70여명이 모인 가운데 ‘권력형 성폭력에 반대하는 한예종 학생 1차 집회’를 열고 이렇게 밝혔다.

이들은 지난 3월 처음으로 대자보가 붙은 이후 12개의 서로 다른 피해 사실을 담은 대자보를 게재했고, 학교 측과 원활한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 사실을 언론 등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비밀유지서약도 했지만 합당하지 못한 징계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한예종 본부 앞에서 집회를 연 학생들은 ‘3개월이 웬말이냐’ ‘징계규정 개정하라’ 구호를 외치며 영상원 건물 내 H교수 연구실까지 행진했다. H교수 연구실 앞에 모인 학생들은 건물 벽 무늬가 인쇄된 천으로 연구실 문을 덮으면서 “직접 H교수의 방을 폐쇄하겠다”고 외쳤다.

최초 대자보를 작성한 피해학생 A씨는 정직 3개월 징계에 대해 “학생들과 피해 내역을 신고하면서 ‘이 정도면 최소 해임’이라고 말을 했다”며 “나중에는 피해 사실이 더 드러나면서 ‘파면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피해학생 B씨는 ‘돌곶이 LP판’ 사례를 언급하면서 “H교수는 자신의 발언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발언을 했다”며 “그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사과의 뜻을 밝힌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B씨는 H교수의 영향력과 입지가 상당하다는 점도 부연했다. 그는 “한예종을 다닌다고 하면 ‘나 H교수 안다’는 말부터 들을 정도로 방송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며 “방송국 최종면접에 가면 면접관으로 와 있거나, 방송국 입사 후에도 ‘H교수의 제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정도”라고 말했다.

영상원 학생회는 “용기를 내 피해 사실 대자보를 붙이고 H교수의 파면 서명에 이름을 올린 340여명의 학교 구성원들의 노력이 짓밟혔다”며 “힘들게 고발한 H교수를 두 달 후 다시 학교에서 만나야 하는 악몽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H교수가 조사 과정에서 반성이나 성찰의 의지를 표명하지 않았다면서 “징계위원회는 ‘방학을 포함한 정직 3개월’이라는 사실상의 ‘휴가’를 선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학생들은 합당한 징계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거부하고, 신고 현황과 징계 과정 대해 비밀을 유지하면서 학교를 믿으며 기다렸다”며 “하지만 학교는 정직 3개월이라는 징계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의결 사유도 가해자인 H교수에게만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H교수의 가해는 상습적이고 지속적이었다”며 “한예종 구성원들은 H교수의 파면을 요구한다”고 재차 촉구했다.

한예종 교무과 관계자는 “7월5일 개최한 첫 교원징계위원회에서 학생과 교수 측 의견이 너무 상반돼 직접 진술조사를 한 학교 인권센터 조사위원을 모시고 7월15일 2차 징계위를 열었다”며 “이어 징계위 위원들끼리 상호 토론을 하고 징계 양형에 대해 투표를 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징계위는 외부위원 4명, 내부위원 4명, 위원장 1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있었다”며 “학교 인권센터는 파면·해임·정직의 중징계 의견을 냈고, 이에 따라 징계위 위원들이 투표한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징계 결과나 H교수 복귀 이후 대책 마련이 미흡하다는 지적에는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어떻게 H교수와 학생들을 분리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고 있다”며 “수업 복귀가 가능해지는 다음 학기부터는 문제가 될 우려가 있으니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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