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좀 양보해” 20대 취업만 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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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7월 8일 0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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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은 우리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늦출 수 없는 과제라는 의견이 있지만 세대간 일자리를 놓고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50~60대가 퇴직하지 않으면 신입사원 채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정년 연장과 동시에 신입사원 연령 제한을 금지함으로써 청년 취업의 문을 넓혀 주는 것이 대안으로 제기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체 일자리가 더 늘지 않는 이상 정년연장에 따른 청년실업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서도 “일대일로 교환할 수 있는 본질적 해결책은 아니어도 여러 해법 중 하나로 청년 연령 제한 금지를 얘기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는 연차마다 급여가 오르는 호봉제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정년을 연장하려면 임금피크제 처럼 인위적으로 급여를 내리는 제도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라며 “영미권처럼 나이에 근본해 고용·해고·급여를 결정하는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 정년연장을 논의할 거라면 청년 취업연령 제한도 같이 없애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청년실업 못지 않은 고령자 실업 문제

한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한 뒤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뉴스1 © News1
한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한 뒤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뉴스1 © News1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 27일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17년 707만명에서 2047년에는 1879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생산연령 100명이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는 같은 기간 18.8명에서 73.3명으로 오를 전망이다.

노인 빈곤율은 당장 2016년 기준 4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2.5%보다 세배 높은 최상위권이다. 기초수급대상 노인인구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과 고령화 속도는 결국 모두 재정 위기로 이어지며 미래 청년들이 짊어질 부담이 된다. 기대수명 증가로 노인들의 ‘일’ 없는 빈곤한 삶은 더 길어진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는 얼마전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의료비 증가로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이 2026년에 모두 고갈된다는 예측을 내놨다. 국민연금도 2057년 고갈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이 양질의 직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본인의 삶 뿐 아니라 청년들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논의돼야 하는 사안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년연장을 사회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고 공언하며 정년연장 논의에 불을 지폈다. 이달 중순쯤엔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 발표를 통해 정부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그러나 ‘청년 일자리와의 상충’ 문제 등으로 비판이 쏟아지자 기재부는 다시 “(정년 연장은) 중장기적으로 신중하게 추진할 과제”라는 입장을 내놨고 사실상 논의는 중단됐다.

정년 연장을 논의중인 정부 인구정책TF 관계자도 통화에서 ‘정년연장에 따른 청년 고용 충격을 완화할 대책들을 마련중인가’라는 취지의 질문에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년 연장은) 중장기적 과제로 논의중이라는 게 예전부터의 입장”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취업연령 제한 폐지…영미권에서 이미 했다
2017.11.20/뉴스1 © News1
2017.11.20/뉴스1 © News1

영국과 미국은 과거 고령화에 대응해 정년 연장을 실시하면서 ‘취업연령 차별 전면 철폐’의 방식을 택했다. 즉 고령자의 정년을 없애기 위한 법이 청년 구직자 ‘연령 블라인드’ 제도의 법적 근거가 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6년 정기간행물 ‘보건복지포럼’에 게재한 강유구 전 주임연구원의 ‘영국의 고용연령차별금지법에 관한 소고’에 따르면 영국은 오랜 구조조정으로 2006년 당시 50세 이상 64세 이하 남성의 3분의1이 무직일 정도로 고령 실업이 심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영국은 고령화 압박도 심각해 향후 25년 뒤까지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었다.

토니 블레어 내각은 이같은 위기를 해소하고 경제활력을 되살리고자 ‘고용연령차별금지법’을 들고 나왔다.

영국에서 2006년 입법돼 2010년 ‘평등법(Equality Act 2010)’으로 통합된 ‘고용연령차별금지법(The Employment Equality (age) Regulations 2006)’은 “나이에 근거한 고용(채용·해고 전 과정) 상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고 정했다.

이 법에 따라 나이를 근거로 해고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사실상 ‘정년연장’이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은 나이가 많든 적든 이력서에 나이를 기재하는 것을 금지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정년연장을 위한 법으로 청년들의 취업연령 상한선까지 동시에 제거한 셈이다. 노인들의 정년을 늘리기 위해 마련한 법이지만 청년들의 구직 가능 기간도 늘려 청년들의 실업 압박감을 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정년 연장’을 위해 만든 법이 곧 취업연령 상한 폐지 법이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영미권은 정년을 연장한 게 아니라 나이 제한 자체를 폐지해서 노인과 청년이 모두 해당 됐다”며 “프랑스도 정년이 없는 직종이 꽤 된다. 자유주의에 엄밀히 따르면 어떤 나이 제한도 안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세종=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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