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건물 거주 아파트 주민들 열흘만에 집으로 돌아와 생활
인터넷-전화 등 복구 안돼 큰 불편… 주민들 “재건축 대책 세워줘야”
5일 대구 중구 포정동 대보상가 4층 베란다에 수많은 전선과 배관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고, 주변엔 쓰레기가 방치돼 있어 전기 합선 등으로 인한 화재가 우려된다. 박광일 기자 light1@donga.com
5일 오후 대구 중구 포정동 대보상가. 지난달 19일 이 건물 4층 목욕탕에서 불이 난 지 2주가 지났지만 건물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났다. 건물 옥상에는 연기에 검게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1980년 지어진 건물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복도 곳곳의 천장 마감재는 깨져 있었고 옥상 시멘트 바닥은 모래처럼 잘게 부스러져 바람이 불면 흩날릴 정도였다.
건물 5∼7층 대보아파트 주민 108가구 149명은 화재 직후 인근 성당을 비롯한 임시 거처 3곳에서 생활하다 열흘 만인 이달 1일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주민들은 불에 타거나 그슬려 못쓰게 된 가재도구를 버리고 집 안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화재 당시 연기와 방수용 물로 직접 피해를 입은 여섯 가구는 바닥과 천장을 뜯어내고 공사 중이었다. 2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 씨(72)는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새 양동이를 받쳐 두고 사는 집도 있다”고 말했다. 중구 재난안전대책본부는 건물의 구조안전 점검을 마쳤고 전기 가스 수도를 긴급 복구했지만 아직 유선방송과 인터넷, 전화는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목욕탕 화재 원인은 전기적 요인인 것으로 경찰과 소방당국은 보고 있다. 목욕탕 입구 구둣방 벽면의 낡은 콘센트에 꽂힌 플러그 단자에서 발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콘센트 내부에서 합선 등의 원인이 겹쳐 열이 나면서 불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건물 안팎에는 여전히 낡은 전선 다발이 방치돼 있었다. 4층 목욕탕 외부 베란다에는 수십 개의 전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건물 내부 천장이나 벽면 곳곳엔 조명 기구 등을 떼어내고 남은 전선이 테이프만 감긴 채 노출돼 있었다. 또 다른 화재나 재난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다.
주민들은 “건물이 낡은 데다 전기와 소방설비 같은 각종 시설이 열악해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직선거리로 40m가량 떨어진 경상감영공원이 2017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일대가 고도제한을 받아 개발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대보상가는 문화재보존관리구역에 지정돼 높이 18m를 넘는 건물은 지을 수 없다.
주민들이 2016년 추진하려 했던 재건축은 자연스레 흐지부지됐다. 용적률을 높일 수 없어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재건축 사업자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박무웅 주민운영위원장은 “사람보다 문화재가 먼저냐. 건물을 고쳐 쓰는 데도 한계가 있다. 제도를 개선하거나 관 주도 개발 같은 대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중구 관계자는 “고도제한을 풀려면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주민들이 먼저 개발 방향에 대해 뜻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민간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윤대식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사유재산이라고 해서 주민들에게만 재정비를 맡기면 더 큰 재난을 부를 수 있다”며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해 주변 지역을 함께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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