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TV 같은 도시… “엄마, 해님이 왜 달님 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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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한반도]역대급 미세먼지 덮친 날, 시민들 대혼란
‘매우 나쁨’ 서울 비상조치, 강원 무대응
지자체마다 기준 달라… 내달에야 통일

그래픽=김수진 기자
그래픽=김수진 기자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려니 ‘렌즈를 닦으면 선명하게 나온다’는 안내문구가 뜨네요.”

“뿌연 도시에서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걷는 모습을 보니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최악의 미세먼지가 덮친 14일 거리의 사람들은 입을 열 수 없었지만, 인터넷의 관심사는 온통 ‘미세먼지’였다. 먼지가 자욱이 내려앉은 도시와 마스크를 쓴 시민들의 모습 등 각종 영상과 사진이 줄지어 올라왔다. 방독면을 쓴 사진도 있었다.

편의점에선 마스크 판매가 급증했다. GS25에 따르면 11∼13일 마스크 매출은 지난해 12월 같은 기간과 비교해 3배 뛰었다. 숨 막히는 일상이 바꿔 놓은 풍경이다.

이날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초미세먼지 주의보와 경보가 내려졌다. 오후 10시 기준으로 m³당 하루 평균 초미세먼지는 △서울 128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경기 127μg △충북 120μg △충남 111μg △인천 106μg 등이었다. 서울 강남구는 한때 188μg, 양천구는 180μg까지 치솟았다. 150μg을 넘는 농도의 초미세먼지가 2시간 이상 지속되면서 서울과 경기엔 처음으로 초미세먼지 경보도 발령됐다. 초미세먼지가 76μg 이상이면 ‘매우 나쁨’인데, 그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친 데는 중국의 영향이 커 보인다. 중국 베이징 인근 톈진(天津)시 허베이(河北)성 도시들을 시작으로 12, 13일 올해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해 중국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베이징 환경관측센터에 따르면 12일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300μg을 넘었다. 이날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한때 522μg까지 올라갔다.

시민들은 미세먼지 움직임을 담은 그래픽 등을 공유하며 ‘중국발 미세먼지’에 촉각을 세웠다. 국립환경과학원장을 지낸 박진원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하면 중국 영향을 60% 이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를 측정할 수 있는 인천 옹진군 백령도 측정소가 측정한 초미세먼지는 14일 내내 104∼154μg을 기록했다.

해마다 1∼3월에는 전국이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는다. 하지만 중국 등 국외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국내 오염원의 영향은 어떤지 실시간으로 점검하지 못한다. 조석연 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일본은 한국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를 체크하기 위해 측정소만 8개 정도를 두고 있다”며 “우리도 중국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측정소를 늘려 정확한 자료를 갖고 중국과 미세먼지 저감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요인에 대해서도 면밀한 측정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미세먼지를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는 화력발전소와 자동차 배기가스, 난방보일러 등이 꼽힌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원자력 발전을 줄이면서 화력 발전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원자력 발전량은 12만1075GWh(기가와트시)로 2017년 같은 기간(13만7989GWh)과 비교해 1만6914GWh가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유연탄, 무연탄 등 화력 발전량은 22만4498GWh에서 22만8219GWh로 3721GWh가 늘었다.

초미세먼지는 15일 차가운 북서풍이 불면서 남쪽으로 밀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수도권은 초미세먼지 등급이 ‘매우 나쁨’에서 ‘나쁨’으로 바뀌겠지만 바람 방향이 남쪽으로 향하면서 충청과 호남, 영남지역은 ‘매우 나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16일에는 전국이 ‘보통’ 혹은 ‘좋음’ 등급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대부분이 미세먼지에 갇힌 14일 서울 경기 인천 등 10개 시도는 차량 운행과 공사장 운영 시간을 제한하는 등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했다. 하지만 대구 경북 강원 울산 경남 전남 제주 등 7개 시도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날 울산과 경남을 제외한 5개 시도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거나 ‘매우 나쁨’이었지만 수수방관한 셈이다.

이는 이 지역들이 현재까지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서다. 환경부는 2017년 수도권에 비상저감조치를 도입했다. 이후 자체적으로 비상저감조치를 운영하는 시도가 늘었지만 7개 시도는 아직까지 대비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 특히 7개 시도 중 경북과 울산은 지난해 초미세먼지가 나쁨 이상인 날이 각각 77일과 73일로 전국에서 3, 4위였다. 서울(67일)보다 초미세먼지가 심했지만 저감 노력을 하지 않았다.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하는 시도 역시 발령 기준이 제각각이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현재 하루 평균 m³당 초미세먼지 농도가 50μg을 초과하고 다음 날 하루 평균 초미세먼지 역시 50μg 초과로 예보되는 등 3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해도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한다. 세종은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만 기록해도 저감조치를 시행하는 등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반면 부산은 미세먼지 주의보나 경보가 내려질 때, 충북과 광주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으로 예보될 때 등 상대적으로 느슨한 기준을 두고 있다. 앞으로 한 달간은 이처럼 시도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제각각인 상황이 계속된다. 모든 광역단체가 통일된 기준에 따라 비상저감조치를 내리도록 의무화하는 ‘미세먼지 특별법’은 다음 달 15일 시행된다.

강은지 kej09@donga.com·김호경·송충현 기자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미세먼지#초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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