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살 수 있었다…“가정폭력 일삼는 남편들, 법이 방관”

  • 뉴시스
  • 입력 2018년 10월 27일 1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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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래 참고 살았다. 아빠는 우리의 뒤를 밟고 할머니를 찾아갔고, 살해 위협을 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이혼이 아니다. 아빠가 사회로 다시 나올 때 남은 우리 가족이 걱정된다. 엄마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피해자 유족)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前) 부인 살인사건은 가정폭력을 대하는 사회의 나태한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수많은 폭력이 위험 신호가 됐고, 그 강도는 점차 높아졌음에도 공권력이 투입될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피해자 이모(47)씨는 새벽 수영을 가는 길이었다. 피해자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는 이씨의 전 남편 김모(49)씨다.

이씨는 김씨와의 결혼생활 내내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이혼한 이후에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여섯 차례 거처를 옮기며 김씨를 피했으나 김씨는 흥신소를 이용한 추적, 차량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부착 등의 방법을 총 동원해 수년 간 이씨를 쫓아다니며 압박한 끝에 지난 22일 결국 살해했다.

사건 이면에 극심한 가정폭력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 보호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기본적인 문제는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이다. 약한 처벌은 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씨의 유족들이 입을 모아 지난 25년여간 지속된 김씨의 폭행을 말하면서도 당시에는 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씨의 딸은 뉴시스와의 앞선 인터뷰에서 “(아빠가) 처벌을 받아 봤자 미약한 수준일 것 같았다. 사회로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며 “오히려 보복이 심해질까봐 걱정됐다”고 토로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가해자의 구속율은 0.8%, 기소율은 26.7%에 불과하다. 반면 가해자 처벌이 아닌 교정 목적의 보호처분 비율은 34%에 달했다.

이씨는 2015년 이혼 직전 김씨를 향한 접근금지신청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당시 출동 이후에도 김씨가 이씨에게 폭행을 시도하고, 술병을 내리치며 욕설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 재발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긴급임시조치를 내리고 다음날 오전 임시조치를 신청했다. 긴급임시조치는 판사의 결정으로 내려지는 임시조치의 전단계다.

그러나 김씨는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이씨의 딸은 당시 상황에 대해 “관련 서류가 집으로 왔었다. 서류를 보긴 했는데 아빠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절차나 과정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현행법은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 임시조치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는 게 전부다. 보복성 범죄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정 의원은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의 실효성을 위해 임시조치 위반자에 대해 과태료 부과가 아닌 징역형을 부과하고 강력하게 가해자를 분리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사전에 극단적인 범죄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혼 직후에도 이씨의 친정까지 찾아온 김씨가 “이씨를 내놓으라”며 깨진 술병을 들고 가족들을 위협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던 피해자의 동생은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이 상황을 마무리 했으나 그 사람(김씨)을 집 밖으로 보내고 ‘주차장으로 나갔네’라고 확인하는 정도였다”고 전했다.

가정폭력 가해자 처벌의 기준이 되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 법은 가해자 보호처분을 통해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것을 제1조에 명시한다. 가해자 처벌이 우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제1조 목적조항을 ‘가정폭력 범죄의 피해자와 가정 구성원의 안전을 도모하고 인권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는 보호처분의 필요성은 유지하되 이후를 ’가족구성원의 안정과 피해자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로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정폭력처벌법이 66개에 이르는 조항에서 피해자의 의사 존중을 강조하는 것 역시 법의 목적이 가정 회복에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가해 사실이 확실해도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유향순 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사회적, 국가적으로 가정폭력 역시 범죄라는 인식이 확립돼야 한다”며 “신고를 하면 범죄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보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며 “친고죄와 반의사 불벌죄 관련 부분은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피해자 이씨의 딸들은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 23일 저녁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빠를 사형시켜달라”며 피의자를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는 27일 정오 기준 14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동의를 받았다. 정부의 직접 답변 기준인 20만명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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