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에 아이 보는 아빠들 “새로운 기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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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지원 공동육아모임 가보니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공동육아 모임 ‘ABC클럽’ 아빠 엄마들이 양재동의 한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든 과일꼬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공동육아 모임 ‘ABC클럽’ 아빠 엄마들이 양재동의 한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든 과일꼬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8월 마지막 금요일인 31일 찾아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정유진 씨(36·여) 집. 문을 열자 아이 8명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아빠 엄마 4쌍과 그 자녀들이 함께하는 공동육아 모임이 진행 중이었다. 모임 이름은 ABC클럽. 영어로 대화하며 미술 체육 요리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모임 시작 시간인 오후 7시 30분이 가까워지자 퇴근한 아빠들이 속속 도착했다. 특별한 불금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모임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빠 무릎에 앉았다. 서로 안부를 묻는 영어 노래를 틀자 박정제 씨(41)가 목청 높여 따라 불렀다. 그의 딸 규리 양(4)은 그런 아빠가 좋은 듯 아빠를 빤히 쳐다보다가 웃으며 목에 매달리기를 반복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각자 좋아하는 과일을 묻고 답하며 과일꼬치를 만들었다. 또 채소 이름을 배우고 그 재료들로 주먹밥을 만들고 나눠 먹었다.

서초구가 지원하는 공동육아 모임은 현재 101개다. 그중 ABC클럽처럼 아빠들이 참여하는 공동육아 모임은 18개다. 지난해는 1곳뿐이었는데 올해 크게 늘었다. 서초구는 아빠들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모임 때마다 참여 가구당 1만 원씩 주는 지원금을 아빠가 참여하면 2만 원으로 늘렸다.

ABC클럽에 모인 아빠들이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다. 모임을 시작한 4월, 아내 손에 억지로 끌려온 남편 4명은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아내 4명은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을 오가며 알게 됐고 공동육아 모임을 꾸릴 정도로 가까웠던 상황. 어색했던 아빠들을 움직이게 한 건 경쟁심이었다. 박 씨는 “내 딸 앞에서 다른 아빠보다 못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 프로그램은 몸으로 알파벳을 표현하는 활동이었다. 아빠들은 양팔을 들어올려 모으고 크게 “에이(A)”를 외쳤다.

아빠와 함께 여러 친구와 노는 횟수가 늘어나자 아이들은 형제자매처럼 어울리게 됐다. 모임 리더를 맡고 있는 정유진 씨는 “또래 친구뿐만 아니라 자주 보는 아빠들이 늘면서 아이들의 사교성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자리에 모인 아이들은 자신의 아빠뿐만 아니라 다른 아빠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안겼다.

모임에 참석하면서 아빠들의 일상은 달라졌다. 모임은 주로 금요일 저녁에 이뤄진다. 과거에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아니었다. 자녀 2명과 함께 모임에 오는 박승현 씨(32)는 “예전에는 금요일 저녁에 주로 회식을 했다. 이제는 다른 회사 동료들도 육아 모임에 대해 관심 있게 물어본다”고 말했다. 네 가족 중 가장 많은 아이 3명을 키우는 이재상 씨(37)는 “공동육아를 통해 육아 부담도 나눠 지고 과거엔 몰랐던 아이 키우는 즐거움도 배우고 있다”며 웃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느끼는 즐거움이 커진 만큼 엄마들은 행복해졌다. ABC클럽 엄마들은 과거에는 혼자 짊어져야 했던 육아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육아에 지쳐 잃어가던 아이 키우는 즐거움을 되찾은 것이다. 둘째 아이를 갖겠다는 큰 결심을 한 엄마도 있다. 박정제 씨의 동갑내기 부인 박지윤 씨는 “그동안 둘째는 생각 안 하고 살았는데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둘째를 낳아도 힘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와 친해진 남편을 보며 남편이 ‘다시’ 고맙고 좋아졌다”고 했다. 다시 내가 고마워졌다니. 남편들의 귀가 번쩍 뜨일 말이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아빠#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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