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조업중 납북 최원모씨 위패, 같은 부대원 아내 유골과 함께 현충원 충혼당에 나란히 봉안
납북자 8명 데려온 아들 최성용씨 “10명 탈출 지원, 모친과 약속 지킬것”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서 납북자 최원모 씨(오른쪽)와 부인 김애란 씨 위패 및 유골 봉안식이 열리고 있다. 두 사람은 6·25전쟁 당시 대북 첩보 임무를 맡은 켈로부대(8240유격백마부대)에서 함께 활동했다. 1967년 최 씨는 연평도 인근에서 조업하다 북한군에게 나포돼 돌아오지 못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엄마의 생전 마지막 말씀은 납북자이신 제 아버지와 함께 안장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유골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현충원에 함께 봉안된 것을 아시면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5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봉안식장에서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66)가 부모님 사진을 보며 말했다. 이날 최 대표의 아버지인 최원모 씨(납북 당시 57세)와 어머니 김애란 씨(2005년 사망) 봉안식(奉安式)이 열렸다.
두 사람은 6·25전쟁 당시 비정규 특수부대로 대북첩보 임무를 맡은 켈로부대(8240유격백마부대)에서 함께 복무했다. 정부는 켈로부대 활약의 공적을 인정해 2013년 최 씨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고, 지난해 김 씨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1967년 6월 5일 최 씨가 탔던 어선 ‘풍북호’는 인천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다 북한군에 강제 나포됐다. 북한은 선원 일부를 돌려보냈지만 선주이던 최 씨는 1972년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15세로 아버지가 나포된 날을 한시도 잊지 못하는 최 대표는 봉안일을 5일로 정했다. 아버지 위패(位牌)와 함께 두는 명패에는 사망일 대신 납북된 날을 기재했다. 보통 사망일이 명확하지 않으면 숨진 장소를 쓰는데 납북 일자를 기재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최 씨의 위패와 김 씨의 유골은 현충원 충혼당에 모셔졌다. 납북자 위패를 충혼당에 모신 것도 처음이다. 김 씨는 현충원 안장 자격이 없었지만 올해 개정된 국립묘지법에 따라 가능해졌다. 그동안 김 씨의 유골은 고향 충남 서천에 있었다.
봉안식에는 최 대표가 북한에서 탈출시킨 납북자 8명 중 4명이 참석했다. 어머니에게 납북자 10명을 고국으로 데려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2명 남았다. 2000년 최 대표 도움으로 탈북한 이재근 씨(80)는 “정말 감개무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어떻게든 납북된 아버지의 뼈라도 구해 오라는 어머니 말씀을 잊은 적이 없다”며 그 때문에 1993년 납북자 귀환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갑작스러운 남북 화해 국면에 대해 “비핵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천륜이 달린 납북자 문제에도 정부는 신경 써 달라”고 말했다. 납북자는 현재 약 300명으로 파악된다.
그는 “납북자 가족들은 여전히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적십자회담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납북자 생사 확인만이라도 바라는 가족들을 위해 정부가 진심을 담아 노력한다면 진정한 ‘평화의 봄’은 찾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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