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서울과 평양의 시간

  • 동아일보


1989년 12월 지중해 몰타 해역의 유람선 위에서 세기의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당시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회담의 주역이었습니다. 이 회담을 계기로 이념 대립이 종식되고 냉전체제가 해체되었습니다.

4월 27일 판문점 우리 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몰타회담 이후 가장 전 세계의 이목을 끈 회담이었습니다. 세계인들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첫걸음을 TV 생중계로 지켜봤습니다. 남북 정상이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허물어뜨리는 발걸음은 무척 낯설었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문서로 합의하였고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적극 협력해 나기기로 했습니다.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기로 했다는 발표에 학생들은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6·25전쟁은 1950년대에 이미 끝난 거 아닌가요?’라는 반응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우리가 휴전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살아올 만큼 현실에 무감각해진 것 같습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과제는 핵폐기 프로그램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제 구체적 실천 로드맵은 북-미 정상회담의 테이블로 넘어갔습니다. 북-미 회담이 성공하고 유엔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남북 관계의 실질적 진전이 가능하겠지요. 우리 정부는 4·27 판문점 선언의 첫 실천 조치로 비무장지대 확성기 철거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추가적 긴장완화 조치들과 다각적 교류·협력들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당장 5일부터 평양 표준시를 서울과 맞추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35도 동경시를 사용해 온 우리와 달리 북한은 2015년부터 127.5도를 표준시로 사용해 서울보다 30분이 늦었습니다. 이제 서울과 평양의 시간이 같아집니다. 시간의 통일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서로를 향해 ‘로켓맨’, ‘미치광이’라고 칭하며 기 싸움을 했습니다. ‘핵단추’를 언급하며 위협했고, 한반도에는 4월 위기설이 퍼지며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생존 배낭, 비상식량, 방독면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잠을 설칠 정도로 꿈자리가 사나웠다고 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변국에 의해 우리 운명이 결정될지도 모를 상황 앞에 무기력함을 느꼈던 게 엊그제입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전환점으로 판문점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상황이 180도 바뀌었으니 격세지감입니다. 시간의 통일과 함께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남과 북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겨우 꼬인 실타래 한 올을 풀었을 뿐입니다.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우리가 이렇게 형제처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내일은 불확실하지만 나는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어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독일 그룹 스콜피언스의 ‘윈드 오브 체인지’(1990년)에 나오는 가사 중 일부입니다. 변화의 바람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옛 소련 등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며 냉전이 해체되었듯이 그 새로운 바람이 마지막 남은 한반도의 냉전을 녹여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남북 정상회담#김정은#북미 정상회담#표준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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