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으로 위협하는 주폭 지난달 2일 119 구급차에서 윤모 씨(오른쪽)가 구급대원 강모 소방위를 때릴
듯이 주먹을 들어 보이는 모습이 내부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이후 구급차 밖에서 윤 씨에게 머리를 맞은 강 소방위는 뇌출혈
후유증으로 1일 숨졌다. 익산소방서 제공
50대 여성 119구급대원이 이송 중이던 환자에게 폭행당했다. 환자는 술에 취한 채 도로에서 난동을 부리던 40대 남성이었다. 폭행 당한 직후 어지럼증을 호소했던 구급대원은 20여 일 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리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 주취자 폭행 29일 만에 사망
지난달 2일 낮 12시경 전북 익산역 앞 왕복 4차로. 윤모 씨(47)가 갑자기 차도에 뛰어들어 승용차를 가로막았다. 이유 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윤 씨는 차도와 인도를 오가며 무작정 시비를 걸었다. 놀란 시민들은 세 차례나 112에 신고했다. 한동안 난동을 부리던 윤 씨는 도로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런 윤 씨를 구하려 전북 익산소방서 강모 소방위(51·여) 등 119구급대원 3명이 출동했다.
윤 씨를 태운 구급차는 4km가량 떨어진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비상등을 켜고 달리던 구급차 안에서 갑자기 윤 씨는 박모 소방사(33)의 머리를 때렸다. “경찰을 부르겠다”는 대원에게 윤 씨는 “벌금 500만 원이면 된다. 신고하라”고 말했다. 이송 내내 윤 씨는 박 소방사와 강 소방위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계속 퍼부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윤 씨는 계속 욕설을 했다. 급기야 강 소방위가 쓴 헬멧을 손바닥으로 5, 6차례 때렸다. 결국 경찰이 출동한 뒤 난동은 끝났다.
폭행 직후 강 소방위는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호소했다. 같은 달 5일과 9일 전주의 병원 2곳을 찾았다. 증상이 나아지지 않자 강 소방위는 5월 중 서울의 한 대형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치료를 위해 병가 중이던 지난달 24일 강 소방위는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져 급히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 1일 오전 5시경 숨졌다. 의료진이 밝힌 병명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뇌출혈’이었다.
강 소방위는 1999년 12월 구급대원을 시작했다. 남편 역시 소방관이다. 아들 두 형제를 키우는 엄마다. 그는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특별한 질병 없이 건강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경찰에서 “당시 이송 때 폭행과 폭언 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는 구급활동 방해 혐의(소방기본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된 뒤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은 윤 씨 폭행과 강 소방위 사망의 인과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윤 씨 폭행이 영향을 미쳤다면 폭행치사 혐의가 추가로 적용될 수 있다.
○ 매 맞고 욕먹는 소방관들
1일 소방청에 따르면 피해자 구조나 환자 이송 과정에서 폭행당한 구급대원은 2014년 131명에서 지난해 167명으로 늘었다. 특히 2016년에는 199명에 달했다. 반면 2014년∼2017년 6월 형이 확정된 가해자 중 절반 이상(51.7%)은 벌금형을 받았다. 가해자 처벌을 더 무겁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방청은 지난해 4월부터 구급대원 폭행 근절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신고자가 주취자일 경우 반드시 경찰과 동행하고 폐쇄회로(CC)TV 등을 활용해 증거를 확보한 뒤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토록 했다. 또 안전을 위해 대원 3명이 1개조를 구성해 구급차로 출동하도록 했다.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2명만 구급차에 타는 비율이 여전히 절반을 넘는다. 한 대원이 구급차 운전 때 홀로 환자를 돌봐야 하는 대원은 폭행이나 폭언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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