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주폭 손찌검에… 18년 헌신 女소방관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일 03시 00분


50대 구급대원 뇌출혈로 숨져

주먹으로 위협하는 주폭 지난달 2일 119 구급차에서 윤모 씨(오른쪽)가 구급대원 강모 소방위를 때릴 
듯이 주먹을 들어 보이는 모습이 내부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이후 구급차 밖에서 윤 씨에게 머리를 맞은 강 소방위는 뇌출혈
 후유증으로 1일 숨졌다. 익산소방서 제공
주먹으로 위협하는 주폭 지난달 2일 119 구급차에서 윤모 씨(오른쪽)가 구급대원 강모 소방위를 때릴 듯이 주먹을 들어 보이는 모습이 내부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이후 구급차 밖에서 윤 씨에게 머리를 맞은 강 소방위는 뇌출혈 후유증으로 1일 숨졌다. 익산소방서 제공
50대 여성 119구급대원이 이송 중이던 환자에게 폭행당했다. 환자는 술에 취한 채 도로에서 난동을 부리던 40대 남성이었다. 폭행 당한 직후 어지럼증을 호소했던 구급대원은 20여 일 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리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 주취자 폭행 29일 만에 사망

지난달 2일 낮 12시경 전북 익산역 앞 왕복 4차로. 윤모 씨(47)가 갑자기 차도에 뛰어들어 승용차를 가로막았다. 이유 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윤 씨는 차도와 인도를 오가며 무작정 시비를 걸었다. 놀란 시민들은 세 차례나 112에 신고했다. 한동안 난동을 부리던 윤 씨는 도로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런 윤 씨를 구하려 전북 익산소방서 강모 소방위(51·여) 등 119구급대원 3명이 출동했다.

윤 씨를 태운 구급차는 4km가량 떨어진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비상등을 켜고 달리던 구급차 안에서 갑자기 윤 씨는 박모 소방사(33)의 머리를 때렸다. “경찰을 부르겠다”는 대원에게 윤 씨는 “벌금 500만 원이면 된다. 신고하라”고 말했다. 이송 내내 윤 씨는 박 소방사와 강 소방위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계속 퍼부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윤 씨는 계속 욕설을 했다. 급기야 강 소방위가 쓴 헬멧을 손바닥으로 5, 6차례 때렸다. 결국 경찰이 출동한 뒤 난동은 끝났다.

폭행 직후 강 소방위는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호소했다. 같은 달 5일과 9일 전주의 병원 2곳을 찾았다. 증상이 나아지지 않자 강 소방위는 5월 중 서울의 한 대형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치료를 위해 병가 중이던 지난달 24일 강 소방위는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져 급히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 1일 오전 5시경 숨졌다. 의료진이 밝힌 병명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뇌출혈’이었다.

강 소방위는 1999년 12월 구급대원을 시작했다. 남편 역시 소방관이다. 아들 두 형제를 키우는 엄마다. 그는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특별한 질병 없이 건강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경찰에서 “당시 이송 때 폭행과 폭언 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는 구급활동 방해 혐의(소방기본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된 뒤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은 윤 씨 폭행과 강 소방위 사망의 인과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윤 씨 폭행이 영향을 미쳤다면 폭행치사 혐의가 추가로 적용될 수 있다.

○ 매 맞고 욕먹는 소방관들

1일 소방청에 따르면 피해자 구조나 환자 이송 과정에서 폭행당한 구급대원은 2014년 131명에서 지난해 167명으로 늘었다. 특히 2016년에는 199명에 달했다. 반면 2014년∼2017년 6월 형이 확정된 가해자 중 절반 이상(51.7%)은 벌금형을 받았다. 가해자 처벌을 더 무겁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방청은 지난해 4월부터 구급대원 폭행 근절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신고자가 주취자일 경우 반드시 경찰과 동행하고 폐쇄회로(CC)TV 등을 활용해 증거를 확보한 뒤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토록 했다. 또 안전을 위해 대원 3명이 1개조를 구성해 구급차로 출동하도록 했다.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2명만 구급차에 타는 비율이 여전히 절반을 넘는다. 한 대원이 구급차 운전 때 홀로 환자를 돌봐야 하는 대원은 폭행이나 폭언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익산=이형주 peneye09@donga.com / 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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