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에서 배우 김윤석이 연기한 박처원 치안감의 최측근이자 ‘고문기술자’로 유명한 이근안 전 경감(81)에게 고문당한 피해자들은 관련 증언을 하며 몸서리 쳤다.
피해자들의 폭로는 1999년 10월 29일자 동아일보에 소개돼 있다.
1970년 경찰이 된 후 줄곧 대공 분야에서 일해 온 이근안 전 경감은 전기고문과 ‘관절뽑기’에 남다른 기술을 발휘하며 고문기구를 가방에 담아 ‘출장고문’까지 다녔다.
1980년대 후반 반제동맹 사건으로 이근안 전 경감으로부터 고문당한 적이 있는 이모 씨(당시 36) 등은 “엄청나게 큰 손으로 팔을 확 잡아당겨 관절을 뽑았다가 다시 쭉 밀어 집어넣었다”며 몸서리쳤다.
1985년 9월 이근안 전 경감에게 고문을 받았던 고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 뒤 법정에서 이 전 경감의 잔혹한 고문수법에 대해 “온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눕혀 발목과 무릎, 허벅지와 배, 가슴을 완전히 동여매고 그 밑에 담요를 깐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하면서 전기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왔다”고 말했다.
사진=동아일보DB
1985년 12월 불법 연행된 뒤 72일 동안 불법 구금돼 이근안 전 경감 등에게 고문을 당했던 납북어부 김성학 씨는 1989년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전기쟁이니까 잘 아는데 다른 형사가 전기고문을 하는 수법과 이근안 씨가 다루는 전기고문 수법을 비교해 보면 이근안 씨의 수법이 훨씬 기술적이었다. 그는 고문에 반응하는 신체구조를 훤히 꿰뚫어보고 신체 반응에 맞춰 아주 적절하게 고문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근안 씨의 고문수법이 아주 능숙해 며칠이고 계속 굶기다가 이틀 정도는 아주 잘 먹이고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고기도 사주는 등 포식시켜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똑같은 방식으로 고문했다”고 덧붙였다.
김성학 씨는 이런 고문을 한차례 받고 나면 닷새 이상 한걸음도 떼놓을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발뒤꿈치와 허리에 물집이 생긴 뒤 짓터져 피로 범벅이 되곤 했으며 나중에는 발등과 엄지 발가락 사이가 시커멓게 멍이 들고 소변에서 검붉은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9일 CBS 노컷뉴스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다세대 주택 지하방에 살고 있는 이근안 씨의 근황을 보도했다. 내복 차림으로 취재진과 맞닥뜨린 이씨는 “인터뷰 안 해”라며 취재를 거부했다. 부인은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홀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 씨는 이튿날 다시 찾은 취재진에게 “지금 30여 년 전 얘기요. 본인 기억도 잘 안 나고, 관련된 사람들 다 죽고 나 혼자 떠들어봐야 나만 미친놈 된다”며 “살 거 다 살고 나와서 지금 이렇다저렇다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또 ‘마지막이라도 행복하게 사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설득에도 “절대 안 한다”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고 한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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