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적십자사 ‘위기의 가정 돕기’ 나섰다

  • 동아일보

‘씀씀이가 바른 기업’ 캠페인 통해 실직-질병 등으로 어려운 가정 지원
17개 기업 매달 정기 후원금 납부

황규철 인천적십자사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24일 ‘씀씀이가 바른 기업’ 캠페인에 14번째로 참여한 한림병원 이정희 이사장에게 현판을 전달하고 있다. 인천적십자사 제공
황규철 인천적십자사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24일 ‘씀씀이가 바른 기업’ 캠페인에 14번째로 참여한 한림병원 이정희 이사장에게 현판을 전달하고 있다. 인천적십자사 제공
지난달 12일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인천적십자사)에 전화가 걸려 왔다. “인천에 사는 30대 남성이 갑자기 심장질환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는데 생계가 막막합니다. 위기가정으로 선정해 치료비를 받을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요?” 서울아산병원 사회사업실이었다. 그러면서 이 남성의 딱한 사연을 전했다.

인천적십자사가 확인해 보니 환자는 생후 5개월 된 딸을 둔 이모 씨(31)로 3월 집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이 씨는 인천에서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심각해지자 아산병원으로 옮겨져 심장수술을 받았다. 이 씨의 부인은 지난해 출산을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중소업체 직원이던 이 씨가 쓰러지자 수술비는 물론 생계까지 막막했다. 쓰러지기 전에도 생활이 어려웠던 이 씨는 금융권에 3000만 원 넘게 빚이 있는 상태였다. 이 씨는 수술을 받고 의식은 회복했지만 두 달가량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인천적십자사 관계자는 “이 씨의 사정이 딱해 위기가정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낸 후원금과 인천지사의 예산을 보태 우선 치료비 1000만 원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천적십자사는 지난해 8월부터 ‘씀씀이가 바른 기업’ 캠페인을 통해 이 씨 가족처럼 위기에 빠진 가정을 돕고 있다. 캠페인에 동참한 기업이 매달 정기적으로 내는 후원금으로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기금은 실직이나 질병, 이혼 등으로 생계가 크게 어려워져 해체 위기에 놓인 가정을 돕는 데 쓰인다. 캠페인 동참 기업에는 인천지사가 만든 ‘씀씀이가 바른 기업’이라고 적힌 현판을 달아주고 있다.

캠페인은 12세 소년의 편지가 계기가 돼 시작됐다. 지난해 2월 초등학생 김모 군(12)의 아버지가 몰던 화물차가 5중 추돌사고를 당했다. 김 군의 아버지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두 달 넘게 입원하면서 치료비만 3000만 원이었다. 김 군의 가족은 보증금 350만 원짜리 낡은 빌라에 세 들어 살고 있을 정도로 곤궁했다. 김 군 아버지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어 산업재해 수혜 대상자도 아니었다. 결국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하자 김 군은 그해 5월 인천적십자사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당시 인천적십자사는 위기가정을 지원할 예산이 바닥을 드러냈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기업과 단체, 개인이 자발적으로 내는 적십자회비 모금이 크게 줄어든 탓이었다.

그러자 황규철 회장(64)이 발 벗고 나섰다. 인천지역 각 업체를 찾아다니며 김 군의 편지를 보여주면서 인천적십자사의 재정난도 함께 얘기했다.

‘기업 순례’를 한 지 석 달여 만인 지난해 8월 수상레저기구 제조업체 ㈜우성아이비가 캠페인에 처음으로 뜻을 같이했다. 이어 지산도시개발과 디딤푸드를 비롯한 7개 업체가 동참했다. 인천적십자사는 같은 해 10월 이들 캠페인 참여 기업과 시민 정기후원금을 모아 김 군 가정에 병원비와 생계비 2000만 원을 지원했다. 이후 6개 가정에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

그 뒤로 부평 수치과 의원과 정수건설, 영진공사가 캠페인에 참여해 1일 현재 17개 기업이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내고 있다. 이달에는 2개 기업이 추가로 가입할 예정이다.

2011년부터 인천적십자사를 이끌고 있는 황 회장은 “기업 후원금이 비록 적더라도 위기에 처한 가정이 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더 많은 기업이 동참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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