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새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다.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이 계속되면서 ‘새’ 자체를 두려워하는 일명 ‘조류 포비아’(phobia·특정 물체를 피하려는 불안감) 현상이다. 2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농가 등 지방 중심으로 야생 조류의 접근을 막기 위해 집 주변에 농약을 뿌리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조사 결과 지난해 8월 3개체에 불과했던 조류 폐사 신고 건수는 같은 해 11월 9개체, 12월 279개체로 급증했다. 하지만 이 중 AI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은 새는 11월 4개체, 12월 12개체에 불과했다. 올해 1월의 경우 폐사 신고된 새 689마리 중 684마리는 AI 바이러스와 상관없이 죽었다.
주요 사인(死因)은 독극물. 환경과학원 정원화 바이오안전연구팀장은 “AI 감염 조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인위적으로 약을 치거나 방제를 하는 사람이 많아져 새들이 중독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콩에 구멍을 뚫은 후 청산가리를 넣거나 다이메크론 등 무색무취 농약을 볍씨에 섞어 집 주변에 뿌리는 식이다. 최근 충남 아산에서 직박구리 등 텃새 46마리, 전북 김제에서 떼까마귀 69마리 역시 독약 등 화학물질을 먹어서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심에선 ‘비둘기 포비아’가 두드러진다. 지난달 30일 광주 북구 임동의 한 도로변에서 비둘기 7마리가 한꺼번에 죽은 채로 발견돼 정부가 AI 검사에 착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리의 비둘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회사원 김모 씨(42·서울 마포구)는 “머리에 무언가 떨어져 보니 전봇대에 앉아 있던 비둘기 똥이었다”며 “AI에 감염될까 봐 일정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 소독까지 했다”고 말했다.
조류 포비아는 정부 내에서도 걱정거리다. 현재 중국에서 유행 중인 H7N9형 AI는 국내에서 확산된 H5N6형과 달리, 중국 내에서 다수의 인체 감염을 유발시켰다. 문제는 H7N9형이 올해 10월 철새와 함께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야생 오리, 기러기 등 철새는 중국, 러시아 시베리아, 몽골 등에서 번식한 후 월동을 위해 습지에서 집결해 9월경 한국으로 이동한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H7N9형에 감염된 철새들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면 그간 인체 감염이 없었던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AI에 걸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 대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조류 포비아 현상이 심화되면서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새들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립생물자원관 김진한 동물자원과장은 “새를 두려워하는 대중의 심리를 막을 순 없다”며 “자칫 꼭 보호해야 할 새들마저 희생될 수 있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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