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도 주민들의 손과 발이 되어준 ‘마을 도선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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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호-천사섬호 등 전남지역 51척… 세상과 연결해주는 마을버스 역할
악천후 땐 섬 앰뷸런스 역할 맡아… 헬기보다 빠르게 환자들 육지 이송

낙도인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주민들에게 생명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마을도선을 12년째 운항하고 있는 선장 최성광 씨(51)가 29일 영산호를 수리하고 있다. 영산도 청년회 제공
낙도인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주민들에게 생명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마을도선을 12년째 운항하고 있는 선장 최성광 씨(51)가 29일 영산호를 수리하고 있다. 영산도 청년회 제공
 29일 오전 8시 20분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선착장. 김모 할머니(81) 등 노인 6명이 영산호(6t)에 올랐다. 총정원이 6명인 영산호는 섬과 흑산도를 연결하는 유일한 마을 도선(渡船)이다.

 김 할머니는 몸이 아파 흑산도에 있는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황모 할머니(73)는 영산도에 가게가 없어 시장을 보러 간다. 노인들을 실은 영산호는 거센 파도를 헤치고 4km 정도를 10분 동안 운항해 흑산도에 도착했다.

 노인들은 흑산도에서 2시간 정도 일을 보고 다시 영산호를 타고 섬에 돌아왔다. 영산도(2.25km²)는 23가구 주민 47명이 사는 낙도로 수지가 맞지 않아 여객선이 운항하지 않는다. 주민들 가운데 35명은 노인이어서 어선이 없다. 영산호는 섬 주민들에게 생명선과 같은 존재다.

 영산호는 섬 앰뷸런스 역할을 한다. 올 2월 김 할머니가 심장이 아파 서둘러 병원에 가야했지만 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다. 김 할머니 이송을 위해 해경 3000t 경비함이 출동했지만 섬 3km 밖 해상에 정박했다. 섬 주변 수심이 낮아 더 이상 접근이 힘든 상황이었다.

 영산호 선장 최성광 씨(51) 등 주민 8명은 김 할머니를 영산호에 태워 경비함으로 옮겼다. 3∼4m 높이의 파도에 주민 8명의 생명도 위태로운 아찔한 상황이었다. 최 씨 등은 김 할머니를 무사히 경비함에 태워주고 섬으로 돌아왔다. 영산호는 한 해 평균 1∼3차례 섬 앰뷸런스가 된다. 경비함이나 흑산도에 착륙하는 헬기보다 빠르게 노인 환자를 목포항까지 이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낙도인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주민들에게 12년째 생명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마을도선 영산호.
낙도인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주민들에게 12년째 생명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마을도선 영산호.
 2004년부터 운항을 시작한 영산호는 신안군에서 연간 1200만 원을 지원하고 주민들이 돈을 보태 운영된다. 하루 1, 2번꼴로 영산도와 흑산도를 오간다. 선장 최 씨는 12년째 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내리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영산호를 운항하지만 월급은 150만 원을 받는다.

 그는 서울에서 공장을 운영하다 1998년 외환위기 때 고향 영산도로 돌아왔다. 최 씨는 “영산호 운항을 위해 지인들 애경사에도 가지 못하고 섬에 있어야 한다”며 “동네 어르신들이 도시에 사는 자식보다 낫다는 말을 할 정도로 고마워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영산호가 낡은 데다 면세유를 연료로 쓰지 못해 운항 여건이 어렵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신안군 안좌도에서 반월도, 박지도를 연결하는 마을 도선 천사섬호(4.36t)도 매일 12차례 섬을 오간다. 천사섬호 선장 정승필 씨(46)는 하루 평균 30여 명의 주민을 실어 나르지만 월급은 140만 원을 받는다. 박지도가 고향인 정 씨는 “의무감으로 천사섬호를 운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서 모도를 연결하는 마을 도선 모세호(4.91t)도 모도 주민 80명에게는 손발 같은 존재다. 이광수 모도 이장(51)은 “진도군에서 모세호 기름값 등을 많이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흥군 봉래면 축정항과 사양도를 이어주는 오작교 역할을 하는 마을 도선 사양호(22t)는 김송길 씨(72)가 선장이고 그의 부인(71)이 유일한 선원이다. 사양호는 전국에서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차도선 가운데 가장 작다.

 전남은 전국 섬 3355개 가운데 2165개(65%)가 있을 정도로 섬 천국이다. 전남지역 섬 가운데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279개에 이른다. 주민 수가 많은 큰 섬은 여객선 91척이 운항한다. 하지만 낙도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 도선 51척은 바깥세상과 연결하는 육지 마을버스 역할을 하고 있다. 김수희 신안군 도서개발과장은 “2013년부터 마을(낙도) 도선 21척을 대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며 “마을 도선 선장들은 봉사정신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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