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형제의 대학진학 꿈 후원해 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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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입국 전후 부모 여의고 주경야독하며 대학진학 앞둬
서울에 거주할 집 없어 발동동… 생활비 후원 등 사회온정 절실

증권 전문가가 꿈인 새터민 김수철 씨가 15일 서울 친구 집에서 머물며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 합격한 김 씨는 동생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주거지 마련이 절실하다고 했다. 광주 새날학교 제공
증권 전문가가 꿈인 새터민 김수철 씨가 15일 서울 친구 집에서 머물며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 합격한 김 씨는 동생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주거지 마련이 절실하다고 했다. 광주 새날학교 제공
 2010년 7월 김수철 씨(당시 15세·사진) 가족은 목숨을 건 탈북을 시도했다. 김 씨와 남동생(당시 13세), 어머니는 당시 잦은 비로 물살이 거센 두만강을 건너야 했다.

 김 씨는 “밀수업 등을 하던 아버지가 ‘고향 땅을 밟아 보는 것이 소원’이라던 국군포로를 탈북시켜 줘 반혁명 종파분자로 체포됐다”며 “아버지가 감금되자 어머니는 당 간부에게 뇌물을 줘 치료를 핑계로 며칠 동안 풀려났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먼저 탈북하고 며칠 뒤 김 씨 등 나머지 가족은 공기를 채운 비닐봉지를 구명조끼 삼아 두만강을 건넜다. 이들은 손을 꽉 잡은 채 거센 물살을 헤치고 나갔지만 중국 쪽 강변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김 씨는 먼저 중국에 온 아버지와 함께 강변을 살펴보다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했다. 어머니의 목에 걸린 비닐봉지는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져 있었다. 가족은 대성통곡하며 어머니를 묻었다.

 김 씨 가족은 2011년 한국에 들어온 뒤 광주에 정착했다. 아버지는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으로 트럭을 사 생계를 꾸렸다. 아버지는 형제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하라’며 뒷바라지를 했다. 잠시 행복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결국 숨을 거뒀고 트럭마저 불탔다.

 김 씨는 당시 광주 새날학교 중학교 과정을 졸업한 뒤 대학 진학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어린 동생을 생각하면 절망할 시간도 없었다. 동생을 위해 낮에는 편의점, 건설 현장, 조선소 일용근로자로 일하고 밤에는 교육방송(EBS)을 들으며 독학했다. 올 10월 동생의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조기잡이 어선까지 탔다. 형제는 힘든 시기를 견뎌 내고 대학 진학의 꿈을 이뤘다.

 광주 새날학교는 김 씨가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에 합격했다고 15일 밝혔다. 김 씨의 동생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 지원해 다음 달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이 형제는 광주에서 소년소녀가장 전세임대주택에 살았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면 서울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국민임대주택을 신청했지만 언제 입주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김 씨는 “대학을 졸업해 증권 전문가로 일하고 싶다”며 “각계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직장인이 되면 소외계층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 형제는 당장 서울에 거주할 곳이 없다. 김 씨는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지만 동생과 함께 지낼 수 없어 입주를 고민하고 있다.

 이천영 광주 새날학교 교장은 “김 씨 형제에게 서울에서 거주할 집이나 생활비 후원 등 온정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의 광주 새날학교 062-943-8935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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