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부형권]미국은 즐기는데 한국은 견디라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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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뉴욕특파원
부형권 뉴욕특파원
“대한민국 교육은 심각한 상태에 와 있다. 청소년들이 죽어 가는데 가장 큰 사망 원인이 자살이다. 그중 80%는 성적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야 하는 교육에 의해 청소년이 죽어 간다는 것은 엄청난 병폐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유명한 조정래 작가(73)가 최근 한국 교육의 처절한 실태를 고발한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출간한 뒤 언론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공부하는 시간은 제일 길지만 학업성취도는 꼴찌다. 억지로 공부시키니 효과가 안 난다. 사교육 시장만 광적으로 팽창해 왔다”고 꼬집었다.

한 전직 장관(71)도 신문에 비슷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초등학생) 손녀가 학원에 나가고서 학교 숙제에 학원 숙제까지 밤낮도, 주말도 없이 해야 했다. 휴가 가서도 숙제해야 하고 방학도 한 주일만 쉬고 학원에 나가야 했다. 내 자녀를 미국에서 공부시킬 때 사교육이라고는 알지도 못했다.”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가려면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두 할아버지는 ‘그런 식으론 정말 안 된다’며 위기감을 호소한 것이다. 기자도 학부모여서 이런 주장엔 저절로 눈길이 가고 ‘미국 교육은 한국과 무엇이 다른지’도 살피게 된다.

가장 큰 차이는 “해브 펀(Have fun·즐겨라)!”이란 표현이다. 미국 학부모들이 아이를 학교버스에 태우거나 자동차로 직접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하는 인사말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즐겨’라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수업시간에 딴짓하지 말고, 학원 가는 길에 옆으로 새지 말고 등등….’

한 뉴욕 주재원은 “초등학교 1학년 딸 학부모 모임에 다녀왔는데 담임선생이 ‘제 유일한 목표는 아이들이 학교 오는 걸 즐겁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더라”며 감탄했다. 고교 때 미국으로 전학한 한국인 대학생(20)은 “학교(고교)에서 소개해 준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내 적성을 찾을 수 있었고 그 경험을 대학 지원 에세이에도 담았다”고 했다. 즐거움을 찾아주고, 재미를 발견하는 교육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경쟁력이 되는 것 같았다.

“피눈물 나게 전공 악기를 연습해 세계적 명문 줄리아드음악원에 합격했을 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많은 미국 학생은 ‘밥 안 먹고는 살아도, 음악 없인 못 산다’고 할 정도로 음악을 정말 사랑하더라. ‘내가 이들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난 견뎌 왔는데 그들은 즐겨 왔더라.”

학교 졸업 후 연주자에서 공연기획자로 진로를 바꾼 한국인 A 씨(34) 얘기다.

한국의 견디기 교육은 학교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계속된다. 미국 명문대와 한국 명문대에서 공부하고 한국 대기업에 취직했던 B 씨(33·여)는 “새벽 2, 3시까지 폭탄주 마시고도 오전 6시 반까지 출근해야 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선배들은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B 씨는 견디지 않고 미국으로 직장을 옮겼다. 한국 기준으론 A 씨와 B 씨 모두 중도 포기자이거나 부적응자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에서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다.

조정래 작가는 한국 교육에 대한 해법으로 ‘국민적 혁명 10년’을 얘기했다. 그 정도까지는 못 하더라도 내 아이가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있게 해 주는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기꺼이 한 표를 던지겠다. 내 주변엔 같은 생각을 가진 학부모가 참 많다.
 
부형권 뉴욕특파원 bookum90@donga.com
#한국#교육#미국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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