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유럽에서 입국하고 눈치 살피는 당신, 딱 걸렸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3일 03시 00분


인천공항 세관 단속 현장

인천공항 세관 직원이 여행객의 가방에 면세한도 초과 물품이 있는지를 검사하고 있다(위 사진). 비행기에서 내린 짐들은 입국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전량 X선 검사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면세한도 초과 물품은 노란색, 마약이나 총기는 빨간색, 식물은 녹색, 동물은 주황색 전자태그가 붙는다(아래 사진). 인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인천공항 세관 직원이 여행객의 가방에 면세한도 초과 물품이 있는지를 검사하고 있다(위 사진). 비행기에서 내린 짐들은 입국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전량 X선 검사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면세한도 초과 물품은 노란색, 마약이나 총기는 빨간색, 식물은 녹색, 동물은 주황색 전자태그가 붙는다(아래 사진). 인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은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앞 세관 심사대에서 초조한 듯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들고 온 캐리어를 X선 검색대에 올려놓은 뒤 핸드백과 휴대전화를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았다. 캐리어는 아무 문제 없이 검색대를 통과했지만 핸드백에서 사달이 났다. 20대 여성이라면 들고 있을 법한 핸드백이었지만 멀리서도 빛이 날 만큼 ‘신상’ 티가 역력했다.

“정말 쓰던 핸드백이 맞느냐”는 세관 직원의 물음에 여성의 얼굴은 귀까지 빨개졌다. 직원이 여성의 여권을 조회해 본 결과 출국하던 날 국내면세점에서 구입한 물건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관세에 가산금까지 더한 7만 원을 지불한 뒤에야 핸드백을 찾아 입국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유럽발(發) 비행기가 타깃

1일 오후 2시 20분 인천국제공항 B구역 입국장. 간간이 몇몇 여행객만 지나가던 세관 심사대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런던 히스로 국제공항과 파리 드골 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공교롭게도 5분의 시간 차를 두고 착륙한 것이다.

세관은 유럽, 특히 프랑스와 영국을 다녀오는 비행기를 대상으로 전체 여행객의 휴대물품에 대해 일제 조사를 벌인다. 반면 그 외의 국가에서 온 비행기는 여행객을 선별해 조사한다. 어떤 나라에서 오느냐에 따라 중점 조사 대상도 다르다. 여행객의 쇼핑이 많은 프랑스 등 유럽으로부터 들어오는 경우 면세품 초과 여부를 단속한다. 반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오는 경우 위조품, 불법 의약품, 마약 등이 집중 단속 대상이다.

런던과 파리에서 온 여행객들은 짐을 찾은 뒤 세관 심사대 좌우에 설치된 X선 검색대 뒤로 길게 줄을 섰다. X선 검색대 옆에선 한 무리의 관광객이 자진 신고를 하고 있었다. 여행자 휴대품 면세 한도가 2014년부터 600달러로 상향 조정되면서 지난해 2월부터 관세청은 여행객이 면세범위 초과 물품을 자진 신고할 경우 세액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때는 납부세액의 30%를 감면받지만 미신고 시에는 40%의 가산세를 내야 한다.

자진 신고를 할 경우 현장에서 당장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집으로 돌아간 뒤 계좌이체를 통해 내면 된다. 반면 자진 신고를 하지 않고 적발된 경우 현장에서 바로 관세를 내야 한다. 돈이 없으면 물건을 맡기고 나중에 관세를 낸 뒤 찾아가야 한다. 장미희 공항휴대품검사관은 “최근 제도가 널리 홍보되면서 자진 신고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줄을 서 있던 한 남성 여행객이 X선 검색대로 다가가자 ‘삐리릭’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세관 직원은 서둘러 그를 지정 검색대로 데리고 갔다. 캐리어에는 노란색 태그가 붙어 있었다. 짐을 풀자 와인 4병이 나왔다. 술의 면세 한도는 1L 이하 한 병(400달러 이하)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짐들은 입국심사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전량 1차 X선 검사를 받는다. 이를 통해 마약이나 총기, 위조품, 과세 초과로 의심되는 물품이 있는지를 일차적으로 거르게 된다. 검색 결과 이상이 발견되면 의심 물품의 종류별로 전자태그를 붙인다.

유경탁 관세행정관은 “면세 한도 초과가 의심되는 가방에는 세관 직원들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노란색 태그를 붙인다”며 “마약이나 총기는 빨간색, 식물은 녹색, 동물은 주황색 태크가 붙어 있어 각각 심사대에서 조사한다”고 말했다.

한창 검색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사복 차림의 직원 두 명이 급히 내려왔다. 여행객의 여권에서 미세한 마약 성분이 탐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갖고 온 제품에는 마약이 없어 그냥 통과됐다. 송인숙 홍보계장은 “일단 입국장으로 내보내지만 이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주요 감시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세관 검색대 앞의 천태만상


일부 여행객은 면세한도 초과 물품에 대한 관세를 내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한다. 하지만 세관의 ‘벽’을 넘기란 쉽지 않다.

일부 여행객은 유럽행 비행기가 전수 조사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짐을 찾은 뒤 은밀히 뒤쪽으로 돌아 다른 입국장으로 간다. 이런 사람들은 사복 차림으로 입국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조사관들의 ‘레이더’에 즉시 포착된다. 조사관들은 무전을 통해 해당 사항을 다른 입국장 세관 심사대에 통보한다. 김석우 관세행정관은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나는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는 짐을 찾고 난 뒤 세관 신고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이뤄진다. 대부분의 사람이 세관 신고서를 내고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안다. 하지만 세관 직원들은 그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한 직원은 “얼굴에 뭔가 불안감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보면 ‘문제가 있구나’ 하는 감이 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신발을 유심히 본다”고 말했다. 실제 공항에서는 자신의 사이즈가 아닌, 비싼 신발을 신고 입국하다가 적발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여행객들의 짐은 입국장으로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X선 검사를 받는다. 태그가 붙지 않은 짐들이 주요 검사 대상이다.

해외를 자주 오가는 항공사 승무원들도 불시에 검사를 받는다. 만약 관세법 위반 행위가 적발되는 경우 이들은 벌금 이외에 회사 자체 징계를 받기도 한다. 항공사들은 내규가 엄격하다. 몇 년 전에는 신입 승무원 한 명이 고가의 유명 브랜드 가방을 몰래 들여오다 세관에 적발된 후 회사에서 징계를 받기도 했다.

세관에서 적발됐을 때 여행객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내가 원래 쓰던 물건”이라고 우기는 ‘오리발형’, 화를 내며 소란을 부리는 ‘난동형’, 실수였다며 한 번만 봐달라는 ‘읍소형’ 등 각양각색이다. 특히 술에 붙는 관세의 세율이 높다 보니 여행객이 세관 심사대 앞에서 갖고 온 술병을 깨뜨리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이날도 4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세관 직원을 앞에 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X선 검사를 통해 여행가방 안에서 여성용 핸드백과 지갑이 다수 발견된 탓이었다. 그가 직접 들고 있던 지갑마저 밀수품으로 의심돼 세관 직원이 검사에 나서자 남성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10여 분의 실랑이 끝에 짐 전부를 놓아둔 채 밖으로 나갔다. 조진용 관세행정관은 “위조품은 관세를 내도 찾아갈 수 없다. 전량 폐기된다”고 설명했다. 정교한 위조품의 경우 해당 브랜드 업체에 정밀 검사를 의뢰하는 일도 있다.

다른 한쪽에선 20대 중반 여성이 30분이 넘도록 집으로 보내 달라며 세관 직원들과 다투고 있었다. 이 여성은 500만 원이 넘는 해외 유명 브랜드 가방을 몰래 들여오려다가 세관 직원에게 적발됐다. 당장 내야 할 관세가 200만 원에 육박하자 다짜고짜 집으로 가겠다며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유경탁 관세행정관은 “일반적으로는 가능한 한 여행객이 관세를 지불하고 물건을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서도 “대리 반입을 하거나 은닉수법이 악의적일 경우 밀수품으로 간주해 해당 물품을 몰수하고 벌금을 매기는 통고 처분을 한다”고 말했다.

유치물품 부동의 1위는 ‘명품 핸드백’

해외에서 귀국한 여행객들이 짐을 찾은 뒤 세관 심사대 좌우에 설치된 X선 검색대 뒤로 길게 줄을 서 있다. 인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해외에서 귀국한 여행객들이 짐을 찾은 뒤 세관 심사대 좌우에 설치된 X선 검색대 뒤로 길게 줄을 서 있다. 인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끝내 세관을 통과하지 못한 물품들은 공항 내 창고로 옮겨진다. 농수산물이나 불법 의약품처럼 국내에 들여오면 안 되는 제품들은 ‘유치’되고, 입국자들이 국내로 반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인 제품은 ‘예치’된다. 인천국제공항 세관에서 유치되는 물품 중 부동의 1위는 해외 유명 브랜드 핸드백이다. 올 상반기(1∼6월)에만 핸드백 적발 건수가 2만2434건에 이르렀다.

예치의 경우 보관료로 1일 5000원가량의 비용이 청구된다. 관세무역개발원 관계자는 “물건을 예치하는 사람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라며 “일주일이면 3만5000원을 지불하고 한국을 떠날 때 찾아가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유치 및 예치 기간은 기본 한 달인데 추가로 한 달 더 연장할 수 있다. 유명 브랜드 가방과 같은 진품 제품들은 대부분 한 달 이내에 찾아간다. 기간이 지나가도 찾지 않는 제품의 경우 검역을 통과한 경우에 한해 공매에 부친다. 나머지 물품은 전량 폐기한다.

여행객 한 무리가 지나간 후 인천국제공항 세관도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하지만 저녁 비행기 착륙이 예정돼 있어 쉬는 것도 잠시다. 관세청은 전체 직원 4600명 중 1000여 명을 인천국제공항 세관에 투입할 만큼 인천공항 관리에 역점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보완돼야 할 부분도 적지 않아 보인다. 관광객이 해마다 10% 이상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세관에 근무하는 인력이 늘면서 인천 세관 직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저가항공사가 늘면서 새벽에 착륙하는 비행기들이 부쩍 늘어 업무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

한 직원은 “주간, 야간 근무가 쉴 틈 없이 반복되지만 인원 부족으로 근무 체계를 개편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여행객 증가에 맞춰 적정한 수준의 인원 보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인천=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세관#명품#인천 공항#검색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