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화학공장서 또 불산 누출… 주민들 “불안해서 못살겠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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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100kg 누출… 19명 병원치료… 주민들, 사고시간 등 은폐의혹 제기
2014년에도 사고… 공장가동 허용

4일 램테크놀러지에서 누출된 불산을 방제하는 과정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금산소방서 제공
4일 램테크놀러지에서 누출된 불산을 방제하는 과정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금산소방서 제공
“아직도 혀와 두뇌의 마비 증세가 풀리지 않았어요.” “이제 불안해서 잠도 못 자겠어요.”

불산 누출로 충남 금산군 군북면 군북초교 체육관에 대피해 있던 정정례 씨(55)는 5일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불산이 누출된 4일 군북면 램테크놀러지 공장에서 200m 떨어진 사과 밭에서 일하다 이상 증세를 느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온 뒤였다.

반도체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이 공장에서 2014년에 이어 또다시 불산이 누출되면서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금산소방서에 따르면 4일 오후 6시경 이 공장에서 순도 49∼55%의 불산 100kg이 누출됐다. 물과 합쳐진 양은 400kg을 넘는다. 이번 사고로 인근 주민 100명이 대피하고 정 씨를 포함한 19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주민 20여 명은 불안한 나머지 아예 군북초 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공장 근로자 20여 명은 보호 장구를 착용해 피해는 없었다. 고용노동부는 5일 안전 문제와 주민 불안을 고려해 공장 가동 중단과 불산 창고 폐쇄 조치를 내렸다.

불산은 자극적 냄새가 나는 무색의 휘발성 액체로 전자회로 등 각종 화학물질 제조에 쓰이는 산업용 원자재다. 염산이나 황산보다 약한 산성이지만 인체 침투성이 강하다. 호흡기와 눈, 피부에 흡수되면 자극 증상을 일으킨다. 2012년 경북 구미에서 불산 누출로 5명이 사망하고 주민 수백 명이 장기간 대피소 생활을 해야 했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

경찰과 소방서 조사 결과 공장 측은 4일 탱크로리에서 공장 저장소로 불산을 옮기다 오후 6시경 누출돼 6시 30분경 방제 작업에 들어갔고 2분 뒤 119에 신고했다. 하지만 최진성 군북면 불산대책위원장은 “마을 주민들 가운데 이날 오후 5시 30분경 연기가 발생해 공장으로 쫓아가 항의한 사람이 있다”며 공장 측이 누출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소석회 등으로 불산을 중화시키는 방제 작업을 하면 연기가 발생하는 데 연기가 난 것으로 볼 때 최소 1시간 먼저 누출이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주민들의 의혹 제기에 따라 공장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주민들은 이날 금강유역환경청장과의 간담회에서 “우리는 시한폭탄을 머리에 이고 사는데 당국은 매번 약간의 벌금을 물리고 다시 공장 가동을 허용하며 사태를 키웠다”며 관계 당국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환경부가 이날 공장 주변의 농산물과 하천, 지하수에 대한 정밀 피해 조사를 벌이기로 했지만 주민들은 “2014년 누출 때도 불산의 주변 환경 피해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불산은 이미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며 관계 당국의 ‘뒷북 행정’을 비꼬았다.

금산=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금산#화학공장#불산#불산 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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