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상자 안에 흰색가루가…마약상, 조건만남에 들고갔다 ‘덜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8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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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상자 안에 이상한 흰색가루가 있는 봉투가 있더라고요.”

지난해 11월 10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의 젊은 여성은 이날 스마트폰의 조건만남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만난 한 남성이 마약을 파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여성에 따르면 남성은 10kg짜리 단감상자를 들고 모텔에 나타났다. 여성은 남성이 씻는 사이 몰래 상자 안을 뒤졌다.

경찰은 이 남성을 유인하기 위해 여성의 휴대전화로 ‘다시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틀 뒤 경찰은 서울 강남구의 한 모텔 주차장에서 김모 씨(41)를 붙잡았다. 신고 내용대로 김 씨는 또 단감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필로폰 1g씩 포장된 작은 비닐 봉투 10개가 발견됐다.

광역수사대는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캄보디아에서 밀반입한 필로폰을 과일상자에 담아 유통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김 씨와 한모 씨(35)를 구속하고 이들이 갖고 있던 시가 1억 원 상당의 필로폰 30g을 압수했다고 18일 밝혔다.

한 씨는 캄보디아에서 밀반입한 필로폰을 작은 봉투에 나눠 담은 뒤 단감상자에 숨겨 고속버스 수화물를 통해 김 씨에게 3차례 보낸 혐의다. 수사당국의 의심을 피하려고 고속도로 수화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일상자 속에 숨긴 것이다.

김 씨는 한 씨가 보낸 필로폰을 서울과 천안 등 버스터미널 근처 건물의 공중 화장실 변기 뚜껑 밑, 화장실 칸막이 틈에 숨겼다.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구매자들에게 필로폰을 전달하기 위한 수법이었다. 그는 건물 경비원의 의심을 피하려고 과일상자를 통째로 들고 다니며 택배 배달원 행세를 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와 한 씨는 캄보디아에 있는 한국인 마약 공급책인 일명 ‘토마토’와 ‘청풍명월’의 국내 유통책으로 드러났다. 토마토와 청풍명월은 국내 마약상들 사이에서 ‘큰손’으로 통하지만 아직 정확한 신원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인터넷 광고로 구매자를 모집하고 스마트폰 메신저인 ‘위챗’과 ‘텔레그램’으로 직접 주문을 받았다. 캄보디아를 방문한 한국 관광객을 포섭해 필로폰을 몸에 숨기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도록 하는 수법으로 밀반입을 주도했다.

경찰 관계자는 “토마토와 청풍명월은 과거 주로 마약 도매상들에게만 필로폰을 공급했지만 최근 밀반입 적발 사례가 늘면서 제때 마약을 받지 못한 도매상들과 갈등이 불거졌고 이후 직접 구매자를 상대로 판매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검찰과 합동해 이들 마약 공급책을 검거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또 김 씨와 한 씨로부터 필로폰을 구입한 34명을 검거하고 이 중 필로폰을 다른 투약자들에게 되판 박모 씨(49) 등 3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3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호경기자 whalefish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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