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여성 창극 연출가인 정도연 감독은 올레길을 걷다가 제주에 정착한 뒤 축제, 공연 등을 기획하거나 연출하며 새롭게 문화를 입히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새롭게 단장한 숲의 푸름처럼 미소가 밝고 싱그럽다. 수많은 스태프를 거느리며 공연 현장을 총지휘하는 연출가의 강단을 외모에서 찾기는 힘들었다. 험하기로 소문난 연출 세계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상대방을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고 주관도 뚜렷했다.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 제주 농어촌 어르신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특유의 친화력을 느낄 수 있었다.
공연 기획가이자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인 창극 연출가 정도연 감독(45). 2004년 ‘수궁가’를 무대에 올리면서 국내 최초의 여성 창극 연출가가 된 후 2010년 3인 창극 ‘심청전’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제주지역 여성단체의 양성평등주간 행사 기획을 위한 미팅을 준비하던 정 감독을 11일 만났다.
요즘 정 감독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동리를 자주 드나들고 있다. 마을 주민 30여 명이 배우, 스태프로 참여해 노래 춤 연기를 하는 뮤지컬 제작을 위해서다. 첫 공연 날짜는 9월 24일로 잡혔다. 아직 본격적인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마음이 급하고 부담감이 크지만 설렘도 강하다. 7년 만에 하는 연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뮤지컬은 조선시대 후기 오지 마을 주민들이 현감이나 목사 등 고위 관료를 모시기 위해 횃불과 도롱이 등을 준비해야 하는 관폐를 겪으면서도 ‘수눌음’(품앗이를 뜻하는 제주 공동체문화)으로 극복했다는 줄거리다.
“서귀포 시 지역역량강화사업 컨설팅으로 마을과 인연을 맺었는데, 이장님이 마을 이야기를 공연으로 풀어보고 싶다며 먼저 공연을 제안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뭔지 모를 감정이 꿈틀했어요. 마당극 형태로 뮤지컬을 만들어 감귤보관창고를 개조한 공연무대에 올리면 독특한 마을 자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 인생을 뒤흔든 올레
서울에서 자란 그는 마을 주민들과 회의를 할 때 “무사 경 햄수과(왜 그렇게 하세요)” 등 제주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억양도 현지인 못지않다. ‘제주올레 걷기축제’를 기획하는 동안 제주 사람들과 몸으로 부닥친 덕분이다. 여성 연출가로 촉망받던 2010년 홀연히 걷게 된 올레길이 인생행로를 바꿨다. 작품 연출과 한일 전통예능 교류 행사까지 끊임없이 달려온 그 자신에게 스스로 휴가를 주려고 선택한 것이 올레길이었다.
3박 4일 여행을 계획하고 배낭을 꾸렸다. 누가, 왜 올레길을 만들었는지 별 관심 없이 그저 떠난 여행이었다. 길에 들어서서 한 코스를 지나는 동안 충격에 빠졌다. ‘제주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렌터카로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봤던 제주의 겉모습이 아닌 ‘속살’에 빠졌다. 4일 일정이 11일로 늘어났다. 이후 올레 소리만 들려도 귀가 번쩍했다. 길을 걸으며 공연도 즐기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제주올레 사무국으로 이력서가 담긴 편지를 보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올레 축제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당시 관에서 주도하는 축제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만들면 다른 식으로 표현할 텐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올레 축제를 기획하려고 관심이 있었나 봐요(웃음). 올레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무대를 구상했어요. 자연과의 조화가 핵심이었고 공연단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중심으로 꾸렸어요.”
정 감독이 기획한 제주올레 걷기축제 무대는 바람과 자연 풍경으로 꾸며졌고 햇빛과 구름이 조명이었다. 인공적인 장비는 최대한 숨겼고 공연단의 볼륨을 줄이고 또 줄였다.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에서는 직접 공연을 벌이기도 했고 먹거리를 팔았다. 주민들이 내놓은 알코올 도수 낮은 발효음료 ‘쉰다리’가 인기 상품으로 등장했고 호텔 셰프와 마을의 전래 음식이 만나 참신한 식단이 만들어졌다. 길의 흐름에 따라 전시, 체험, 공연, 먹거리를 배치한 신개념 축제였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한 코스를 10번이나 걷기도 했습니다. 처음 축제를 기획할 때 마을 주민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는데 3년이 지나니까 자발적인 참여가 많아졌어요. 축제를 즐기고, 벤치마킹하러 오는 분들을 보면서 뿌듯했어요.” ○기획, 연출의 후진 양성이 꿈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차례 제주올레 걷기축제를 기획하다 정 감독은 아예 제주에 눌러앉았다. 육지에 나가서 일을 할 때면 뺨을 때렸던 제주의 바람이 그리웠고, 잎이 떨어져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정감이 묻어나는 팽나무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공연 기획과 연출을 위해 2012년 4월 4일 서귀포시에 ‘브로콜리 404’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제주 특산 브로콜리의 모양이 반짝반짝 빛나는 두뇌처럼 보였다. 몸에 좋은 영양소가 많은 것처럼 ‘문화예술계의 영양 덩어리’가 되고픈 욕심도 담겼다.
대학 졸업 후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스물여덟이라는 나이에 서울예술대 영화과에 진학할 때는 제주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꿈조차 꾸지 못했다. 해보고 싶었던, 좋아하는 분야였기에 학창 시절은 금방 흘렀다. 영화판 막내부터 시작해 스크립터, 시나리오 제작 등의 일까지 하게 됐지만 6개월에 60만 원을 벌 정도로 사정이 열악했다. 이러다 굶어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인 감독을 선호하는 풍토로 인해 영화감독 입문이 쉽지만, 두 번째 작품을 내놓기가 가장 어려운 나라라는 현실에 회의감도 있었다. 연출력 부족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민할 즈음 퍼뜩 학교에서 연출론을 가르쳤던 김효경 교수(2015년 타계)가 떠올라 당시 뮤지컬 제작 현장에 무작정 찾아갔다.
“교수님은 ‘연출은 하나다’라고 자주 이야기했어요. 연출을 활용하는 장이 영화인지, 공연무대인지, 방송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말씀에 공감을 했어요. 공연의 생동감은 영화와 다른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매회 새롭게 다르게 다가오는 점이 공연을 사랑하게 된 이유였어요. 교수님 밑에서 조연출, 무대 조감독 등을 경험하면서 공연연출가로 진로를 바꿨어요. 조연출 4년 차 첫 연출 제안을 받았고 7년 차에는 ‘이제 당당히 독립하라’는 말을 들었어요.”
‘뮤지컬 연출의 거장’으로 불렸던 김 교수의 최초 여성 연출 제자였다. 독립은 했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여전했다. 창극 연출과 제주올레 걷기축제 기획 등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미래를 보장받지는 못하고 있다. 직원 월급을 챙겨야 하는 날이 너무도 빨리 돌아왔다. 연출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연출을 하려는 후배들이 드문 것도 속상하다.
“연출과 기획은 역할이 다르지만 둘 다 전문성을 요하고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문화는 많은 것을 품고 있어서 기획을 한다는 말을 할 때 늘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요. 제주에서 기획, 연출 분야의 인재를 키우고 동시에 문화를 입힌 콘텐츠를 개발할 생각입니다. 문화 분야에 종사하는 인력이 뭍으로 나가지 않아도, 투 잡(two job)을 하지 않아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을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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