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엽전 한닢이 나를 울리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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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전으로 뜬 서울 통인시장, 비가맹 점포 상인들은 분통

일요일인 10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의 한 분식집 앞에 ‘엽전 도시락’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다양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엽전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일부 점포는 까다로운 조건 탓에 취급조차 할 수 없어 울상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일요일인 10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의 한 분식집 앞에 ‘엽전 도시락’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다양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엽전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일부 점포는 까다로운 조건 탓에 취급조차 할 수 없어 울상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5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통인시장의 한 점포. 20대 남녀가 찾아와 음료수를 고른 뒤 ‘엽전’을 내밀었다. 주인 A 씨는 한숨을 내쉬며 “가맹점이 아니어서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호기심에 들떴던 남녀의 얼굴이 금세 실망으로 바뀌더니 시장 내 다른 점포로 발길을 돌렸다. 이날 A 씨의 가게에는 엽전을 들고 왔다가 허탕을 치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2012년 선보인 엽전은 통인시장을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특히 엽전을 주고 이용하는 도시락 카페는 통인시장의 상징이다. 시장에서만 쓸 수 있는 엽전(개당 500원)을 구매한 뒤 점포를 돌면서 음식을 구입해 도시락에 담아 맛보는 것이다. 주머니에 엽전을 넣고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고 기름떡볶이와 효자김밥 등 이색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어 인기다. 평일에는 단체 관광객, 주말에는 가족 단위 손님이 몰리면서 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다.

하지만 엽전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장 상인들 사이에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A 씨 점포처럼 상인회로부터 가맹점 자격을 받지 못한 곳은 엽전을 취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통인시장 상인회에 소속된 점포 78개 중 엽전을 받을 수 있는 이른바 ‘도시락 카페 가맹점’은 24개다. 가맹점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6개월 이상 영업해야 한다. 또 엽전으로 구매하기 쉬운 500∼1000원 단위의 먹거리를 팔아야 한다. 또 직접 제조한 품목을 3종 이상 갖춰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춰도 모든 점포가 가맹점이 될 수는 없다. 가맹점을 24곳으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비가맹 점포는 기존 가맹점이 자리를 내놓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상인회 측은 가맹점 제한을 “불가피한 규제”라고 밝혔다. 모든 점포에 가맹점 자격을 줄 경우 시장 전체가 먹거리를 판매하는 점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엽전 마케팅이 처음 시작된 때부터 가맹점 수가 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다 보니 A 씨처럼 뒤늦게 자리 잡은 상인들은 좀처럼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A 씨는 “무심코 엽전을 받았다가 비슷한 물건을 파는 다른 가맹점 상인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며 “엽전 거래 자체가 넘보기 힘든 권리처럼 느껴져 씁쓸하다”고 했다.

농수산물 등 먹거리가 아닌 상품을 파는 상인들은 품목 제한에도 불만을 나타냈다. 현재 엽전으로 먹거리만 살 수 있다. 남은 엽전은 도시락 용기 값 500원을 차감한 뒤 돌려받게 된다. 식재료를 파는 상인 B 씨는 “먹거리를 사고 남은 엽전에 현금을 보태 장을 볼 수 있게 하면 시장 전체에 훨씬 이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상인회는 “처음부터 도시락 카페를 위해 엽전 거래 제도를 도입했다”며 “품목을 확대하면 관리가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엽전 인기 덕분에 통인시장에 손님이 몰리면서 점포 임차료도 오르고 있다. 3년 전 33m²에 월 50만 원 안팎이던 점포 임차료는 현재 100만∼150만 원에 이른다. 엽전을 취급하지 못해 매출 걱정이 큰 비가맹 점포 중에는 치솟는 임차료 부담에 이전을 고민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상인회 측은 “엽전 도시락 매출의 20%를 시장 내 식재료 구매에 쓰도록 하고 있다”며 “추가 상생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통인시장#비가맹 점포#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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