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이 사건’ 재발 막아야 하는데” 현장입력 업무과중에 이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4일 16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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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제3의 ‘원영이 사건’ 막아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계모에게 학대당하다 실종됐던 신원영 군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런 참혹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신 군의 경우 지역의 아동복지센터에서 아동학대 정황을 발견한 게 무려 3년 전인데도 끝내 참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충격도 크다.

그 당시엔 없었던 아동학대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2014년 제정되는 등 이제는 아동학대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문제는 이를 시행할 현장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심지어 최근 사표를 쓰거나 이직하겠다는 아동학대 상담원이 계속 나오고 있다.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이유를 대는 사람도 상당수라는 게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전언이다.

이 기관의 관계자는 “지금도 일이 많은데 지난해 말부터 잇따라 터진 아동학대 사건으로 업무 강도가 급증하고 있다”며 “현장 인력이 모자란 상태에서 추가로 빠져나가는 상담원들이 많아서 걱정”이라며 한숨쉬었다.

정부 산하기관으로 아동학대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현재 전국에 55개. 기관당 평균 근무인력은 9명 정도다. 그러나 현장 전문가들은 “최소한 12~15명은 돼야 업무가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해외 선진국의 경우 아동인구 10만 명당 1개의 기관이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20만 명당 1개에 그치는 실정이다. 한국과 아동 수가 비슷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아동 전문 상담사가 맡는 사건이 1인당 15건인데 비해 한국은 60여건으로 4배 더 많다. 미국 아동보호국(CPS·Child Protective Services)이 신고접수와 현장조사, 사건 판단 등에 집중하고 이후의 보호 및 관리 조치는 지역센터가 담당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건의 접수부터 종결까지 모두 맡아야 하는 것도 업무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꼽힌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최운용 상담원은 “아동학대 사례는 사건 당시의 응급조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의 교육과 상담,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이 몇 년간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챙겨야 할 사건들이 누적된다”며 “현장의 인력확충 속도가 이를 따라오지 못하다 보니 ‘악’ 소리가 날 판”이라고 전했다.

2014년 특례법 제정 이후 지난해 말까지 2년간 112 신고전화 등 신고량은 47%가 늘었다. 2015년에만 2만 여건에 이른다. 그러나 아동복지 상담원의 평균 근속년수는 1년8개월. 지난해 이직율도 27%나 됐다. 현장의 한 상담원은 “장기결석생과 예방접종을 안 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 등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산더미”라며 “중대사건들이 더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두려움과 부담감이 거의 마지노선까지 와 있다”고 털어놨다.

관련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아동학대 방지 관련예산은 현재 복권기금 등에서 충당되고 있을 뿐 일반회계 예산으로는 잡혀있지 않다. 2000년대 중반 반짝 늘어나는 듯했던 예산은 다시 삭감됐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사업이 국가사업으로 지정돼 국비가 지원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지난해였다. 또 다른 현장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표가 되는 공약에만 집중되고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뒷전인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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