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예나]친일인명사전 안샀다고 교장 소환한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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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나·정책사회부
최예나·정책사회부
“교육자로서의 국가관이 매우 의심스럽다. 서울시의회에 출석을 요구하고 징계를 요구하겠다.”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이 29일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하는 학교장들에게 ‘소환장’ 발급을 예고했다. 그는 “보수적인 정치세력과 일부 언론의 방해로 몇몇 학교장들이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보류하고 있다”며 “시의회의 예산 의결권을 무시하고 교육감의 지시사항을 거부한 것으로 학생들에게 본을 보여야 할 교육자이자 공직자로서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친일인명사전 강제 구입 지시에 대한 불만이 폭발 일보 직전이다. A고 교장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고 교장인 나조차 읽어보지 못한 책을 섣불리 도서관에 비치하는 건 교육자로서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B고 교장은 “특정 민간단체가 만든 도서의 구입을 강제하는 건 교육청이 그곳을 간접 지원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학교장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C고 교장은 “교육과정상 필요한 책인지는 학교장이 판단해야 하는데 교육청은 ‘돈(30만 원) 줬으니 사라’는 식”이라고 했다. 학교가 불법을 저지르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도서관진흥법에 따르면 학교는 도서 구입 전 1주일간 공포하고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방학이라 운영위를 열기 어렵고, 운영위가 반대할 경우 교육청 지침을 따르려면 법을 위반해야 한다.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던 교장들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교육청에 반발할 수 있는 학교가 몇이나 될까요. 공립학교는 특히 그렇고 사립학교는 괜히 감사나 받죠.” 이에 상당수 학교는 책을 사되 교장실이나 창고 등에 비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한 교장은 “학부모단체에서 도서관에 책을 비치하는 교장은 고발하겠다고 해 다행히 핑곗거리가 생겼다”라며 웃었다.

일단 시교육청에 친일인명사전 구입 거부 의사를 밝힌 13개교 교장(29일 기준)은 시의회에 출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가장 바쁜 개학 시즌에 말이다. 학교장이 시의회에 출석하는 건 이례적이다. 도서를 구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는 최초다. 김 위원장은 이들 교장에 대한 징계까지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원 징계는 국가가 교육감에게 위임한 사무다.

누가 올바른 교육자인가. 학생들에게 끼칠 영향은 전혀 고민하지 않고, 책 살 돈을 쥐여줬다고 “잘 알겠습니다” 해야 하는가.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한 교장들은 잘못된 국가관을 가진, 학생들을 위하지 않는 교육자라는 뜻인지 묻고 싶다.

최예나·정책사회부 yena@donga.com
#친일인명사전#교장#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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