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띄엄띄엄 대신 속전속결 재판 도입 비리 정치인 시간끌기 안통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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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집중심리 재판부’ 전국 첫 신설

서울중앙지법이 충실한 심리와 신속한 형사재판을 위해 전국 법원 최초로 ‘집중심리 재판부’를 두고 국민참여재판처럼 일정기간 ‘연일(連日) 재판’ 하는 방안을 새롭게 시행한다. 뇌물 수수 등 부패 사건에 연루된 유력 정치인 또는 기업인들이 해를 넘겨 지지부진하게 재판을 미루던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법은 22일 법관 인사에 맞춰 증설한 형사합의31부, 32부 2곳과 기존 재판부인 형사합의28부를 집중심리 재판부로 지정해 해당 재판부에 배당되는 사건 재판을 이같이 진행하겠다고 29일 밝혔다.

국민적 관심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손실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중요 사건들이 대상이다. 법원은 성과를 지켜보고 분석한 뒤 향후 전체 형사 재판부로의 전면 시행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 7일 집중심리 첫 공판준비기일…1호 사건은?

이르면 7일부터 첫 집중심리 대상 사건의 공판준비기일이 열릴 계획이다. 29일 현재 신설된 형사합의부 2곳에 배당된 사건은 20여 건씩 총 40여 건. 이 가운데 부패사건을 전담하는 형사합의32부에 배당돼 7일 오전 첫 공판준비기일을 앞둔 임경묵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71) 사건이 첫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이사장은 세무조사로 기업인을 압박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알선수재 등)로 구속 기소됐다. 포스코 비리 관련 제3자 뇌물 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64)도 같은 재판부에 배당돼 집중심리 재판을 기다리게 됐다.

이미 준비기일이 기존 재판부에 한두 차례 잡혔던 중요 사건도 재판부 신설에 따라 법원 직권으로 재배당해 집중심리로 전환됐다. 해군 해상 작전 헬기 ‘와일드캣’ 도입 사업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돼 형사합의30부에서 한 차례 공판준비기일이 잡힌 최윤희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63) 사건도 32부로 재배당됐다.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화물연대 대구경북구미지회장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사건도 형사합의31부로 옮겨졌다.

해당 재판부는 조만간 해당 피고인들에게 집중심리 재판부에 배당됐다는 안내공문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소송 당사자가 집중심리를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재판부 배당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는 방침이다.

○ 띄엄띄엄 재판 사라질까

이번 집중심리 재판부 신설은 법정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공방과 증거조사로 이상적인 형사재판을 구현하겠다는 법원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계속 개정해야 한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의 취지를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이태원 살인사건’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 사건 등 집중심리로 진행된 일부 사례도 있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형사재판은 재판부 일정과 효율성을 고려해 2∼4주 간격으로 속행해왔다.

법원은 ‘띄엄띄엄 재판’이 사라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대를 걸고 있다.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처럼 집중심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빨리 밝혀 그에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 판사들에게 기억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한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대검찰청도 집중심리 재판부 신설에 대비해 중요 사건은 부장검사를 주임검사로 하고 직관하게 하는 등 지침을 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집중심리 재판부의 한 재판장은 “부장검사가 공판을 주도하면 아무래도 공판에 무게가 실린다”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 법조계 반응 엇갈려

일선 검사들은 “기소 뒤 빨리 재판이 진행돼야 검찰에서 조사받은 증인들의 증언이 오염되지 않는다”며 집중심리 재판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또 되도록 수사검사가 인사이동 전에 직접 재판을 챙길 수 있다는 점도 높이 사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집중심리 재판이 되면 다양한 사건을 수임하기가 어려워져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재판장은 “특히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거나 다투는 쟁점이 많은 재판은 피고인과 검사 간 의견을 조율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단 며칠 안에 피고인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어 공판준비기일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원 관계자는 “공판준비기일을 다소 오래 갖더라도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양측의 의견과 쟁점을 제대로 정리한 뒤 집중 심리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연고 재판부 재배당 원칙(고교 동문, 연수원 동기 등 판사와 개인적 연고가 있는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면 재판부를 바꾸는 형식)을 역이용해 집중심리 재판부와 연고가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 재배당을 노리는 피고인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점도 보완이 필요한 사항으로 지적된다.
※ 집중심리 재판부

정식 명칭은 집중증거조사 재판부. 기존에 2∼4주 간격으로 열리던 재판과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연일 재판을 여는 재판부다. 증인이 다수인 경우 이틀 연속 증인신문을 한 후 하루를 쉬고 이틀 연이어 증인신문을 하는식으로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267조의2는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계속 개정해야 한다’고 집중심리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여인선 채널A 기자
#집중심리#연일재판#속전속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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