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수에도 “그만둬”… 회사 아닌 지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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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주제는 ‘직장 에티켓’]<193>심각한 사무실 언어폭력

경영컨설팅 업체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허모 씨(32)는 최근 직장을 그만뒀다. 해당 업체 대표가 허 씨의 작은 실수에도 수시로 “그만두라”며 망신을 주자 참지 못하고 사표를 쓴 것이다.

이 대표는 허 씨의 작은 실수에 대해 “재미로 회사를 다니느냐.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하는 일이 뭐냐”며 사무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 그는 “망신을 당할 때마다 너무 큰 모욕감을 받았다”며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 도저히 직장생활을 견딜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직장생활 2년 차인 정모 씨(27·여)는 직속 상사가 언제 자신에게 욕설이 섞인 막말을 할지 몰라 항상 주눅이 들어 있다. 상사는 자신이 시킨 일을 흡족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면서 정 씨에게 “개××” “쌍또×이”라는 욕설을 퍼붓기 일쑤. 이 때문에 정 씨는 스트레스성 탈모 증세까지 나타났다. 정 씨는 다른 상사에게 피해를 호소했지만 “널 교육하려고 해서 한 말 아니겠느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라”는 냉소적인 대답을 들어야 했다.

수직적인 국내 기업의 직장 문화 탓에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많다. 지난해 취업 포털사이트인 ‘사람인’이 직장인 1008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8%가 ‘직장 상사 등으로부터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3명 중 1명꼴로는 ‘수시로 들은 폭언 때문에 퇴사를 했다’고 응답했다.

수평적인 관계에서도 나쁜 언어 습관을 가진 동료는 직장 내 기피 대상이다. 동아일보와 사람인의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가장 싫어하는 동료 유형’으로 ‘언어 습관이 좋지 못한 동료’(22.0%)가 꼽혔다.

문제는 직장 내 언어폭력이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언어폭력을 개인 간의 문제 혹은 일을 배우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직장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혜숙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상사는 권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하 직원에게 지도 감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언어폭력을 휘두르기 쉽다”며 “언어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선 리더에게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직장 문화를 만들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피해를 당한 부하 직원이나 동료가 이를 호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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