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 진학 후 뒤늦게 발견한 예체능-문학 ‘끼’ 맘껏 키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3일 03시 00분


운영 3년차 서울 ‘거점학교’ 안착

서울 강동구 상일여고는 올해 1학기부터 ‘시·소설 창작’ 거점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고교생 20여 명이 이곳에서 문학을 향한 열정을 키운다. 지난달 10일 1학기 마지막 수업을 마친 이종윤 교사와 학생들이 자신이 쓴 시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서울 강동구 상일여고는 올해 1학기부터 ‘시·소설 창작’ 거점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고교생 20여 명이 이곳에서 문학을 향한 열정을 키운다. 지난달 10일 1학기 마지막 수업을 마친 이종윤 교사와 학생들이 자신이 쓴 시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서울시교육청이 일반고 살리기 정책 중 하나로 추진하는 ‘교육과정 거점학교 제도’(이하 거점학교)는 3년 차인 올해 어느 정도 현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점학교는 음악, 미술, 체육, 과학, 제2외국어, 직업교육을 진행할 지역별 학교를 선정한 뒤 일반고 학생들이 소속 학교가 아닌 이 학교들에서 심화 정규수업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이를테면 미대 입시 준비를 희망하는 일반고 학생이 미술과정이 개설된 인근 거점학교에 모여 입시 관련 수업을 함께 듣는 형식이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2013년 2학기에는 24개 학교에서 1138명이 참여했는데, 올해는 1학기에만 참여인원이 2053명에 이르렀고 학교도 새 학기부터 46곳으로 늘어난다. 3년 차를 맞이한 거점학교가 도입 시점에 비해 2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 일반고 교육과정이 위축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시교육청의 ‘일반고 살리기’ 정책 중에서는 효과가 나타난 정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전임 교육감이 시작한 정책이지만 후임 교육감이 이를 이어받아 교육에서 정책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 올해 문학, 연극으로 영역 넓혀

거점학교는 일반고에서 입시를 준비하려고 해도 방법을 몰라 막막했던 미술, 음악, 체육과정을 대비해 준다는 의미가 강했다. 이 과목들은 사교육에 의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이 과목들에 대한 입시까지 책임영역을 넓히려는 고민에서 거점학교 정책이 출발했다. 즉, 거점학교는 대학 입시와 연관성이 컸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서울지역 거점학교 정책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 대학 진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학생들이 흥미와 관심을 보이는 프로그램이라면 거점학교로 개설됐다. 올해 1학기에 처음으로 운영을 시작한 상일여고의 ‘시·소설 창작’, 경인고의 ‘연극’, 동대부속여고의 ‘영화영상’ 과정이 대표적이다.

올해 1학기 상일여고 시·소설 창작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순수하게 글을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달 10일 이 학교 시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한 강동고 2학년 이상현 군(17)은 돈이 없어 불행한 남자 이야기를 주제로 시를 쓴 뒤 “평소 우리 사회에 대해 느끼는 생각들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시 창작을 담당하는 상일여고 이종윤 교사는 “시·소설 창작 과정을 운영하면서 문학을 통해 청소년기의 고민을 녹여내려는 학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경인고는 2011년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으로 연극 과정을 운영하다가 학생들의 호응이 높아 이를 올해 거점학교로 개설했다. 올해 초 연극인을 강사로 초빙하고, 대학로에서 직접 소극장을 빌려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정원 34명을 훌쩍 넘긴 고교생 60명이 지원했다. 평소 교육과정에서 접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 이를 원하는 학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 교사의 열정만으로 유지하기에는 무리

시교육청의 거점학교가 교사 개개인의 열정에만 의존하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를 운영하는 학교와 교사가 직접 프로그램을 짤 경우, 시교육청에서는 이를 승인해주고 강사지원비만 내주는 구조에 머물게 된다. 교육청 차원에서는 프로그램 노하우를 축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해 처음 시작한 시·소설 창작 거점학교의 경우에도 가장 먼저 봉착한 문제는 이를 가르칠 만한 교재가 없다는 것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재를 개발할 인력도, 예산도 없었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이 지원비만 내줄 뿐 프로그램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못하다 보니 현장에서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최근 서울의 한 체육 거점학교에서는 강사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입시학원 강사를 초빙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곳 거점학교에서 체대입시반 수업을 듣는 일반고 학생들이 해당 강사가 소속된 체대 입시학원으로 몰리고 있다는 민원도 제기됐다.

전국체대입시학원협회 김종길 부회장은 “거점학교가 학교 스스로의 역량은 키우지 않고, 입시학원과 결탁한 형태로 운영되면서 사실상 공교육을 포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거점학교가 사교육 강사에 의존하면서,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임현석 기자lhs@donga.com 권재희 인턴기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교육과정 거점학교 제도#거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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