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한의학과, 면역학 해부학 배우는 한의대?…양방까지 아는 한의사 키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6일 0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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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100]동국대 한의학과

해부학, 조직학, 생화학, 인체생리학, 면역학, 병리학, 영상의학…. 이름만 보면 양방 의과대학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목 같다. 그런데 이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 한의대생들이라면? 동국대학교 한의학과 학생들은 예과와 본과 과정에서 이들 양방의학을 기초학문으로 배운다. 물론 한의학 교과목이 주가 되고 부가적으로 공부하는 것이긴 하다.

일반인들은 대개 한의사는 예부터 내려온 동양 전통의 의학지식을 배우고 침, 뜸, 한약 등을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태여 서양의학을 배울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동국대 한의대생들은 필수 교과목으로 공부하고 있다. 왜 그럴까.
“한의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의학은 실용학문이며 전통지식만을 추구하거나 교육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용학문은 당대의 과학기술 발달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한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질병 발생의 패턴이 변화하거나 당대의 과학기술 발달에 따라서 새로운 치료 방법을 개발해 왔으며, 그에 따른 치료 영역을 꾸준히 넓혀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의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한의대생들이 새로운 의학 정보와 기술을 익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이병욱 한의학과 교수(원전의사학)의 설명이다. 한의학은 실용학문으로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는 만큼,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갈 열정적인 학생들이 동국대 한의학과로 오기를 기다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한의과대학에서는 한의학에 서양의학을 접목해 치료 효과를 높이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 전승돼온 한방의 정수를 계승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여러 학문들과 융합 연구를 통해 질병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진단과 치료에 대한 이론체계와 기술적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시도들은 동국대학교처럼 양방과 한방 학과를 모두 갖추고 있는 대학들에서 특히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동국대의 경우도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대 교수들이 직접 한의대생들을 가르치는 등 깊이 있는 의학 교육을 하고 있다.

현대 의학의 소양까지 갖춘 한의대생을 육성한다는 동국대 한의학과의 교육 목표는 전공교육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6년제 교육 과정의 커리큘럼은 크게 기본, 심화, 통합의 3단계로 구성돼 있다.

예과 1, 2학년에 해당하는 기본단계에서는 한의학개론, 한의학한문, 중국어강독, 약용식물학, 임상본초학 등 한의학의 기초적인 개념과 해부학, 생화학, 조직학, 발생학 등의 서양의학의 기초 지식, 그리고 의학 영어, 중국어 강독, 동양철학사 등 기초 교육을 받는다.

본과 1, 2학년에 해당하는 심화단계에서는 한의임상생리학과 양방인체생리학, 한의진단학과 양방진단학, 경혈학과 양방병리학 등 전공과목 및 한의학과 관련 있는 서양의학 지식을 골고루 배운다.

본과 3, 4학년에 해당하는 통합단계에서는 그동안 배운 전공 기초과목을 바탕으로 분야별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한다. 특히 피부과, 내과, 부인과, 소아과 등 임상 8개 분야에서는 전문의 과정을 담당하는 교수들로부터 전통지식과 현대의학적 관점에서 환자 진료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

또 졸업반에 해당하는 본과 4년에서는 임상역량 강화를 위해 34개의 전공 강좌가 모두 임상실습 중심으로 한방병원에서 진행된다는 것이 특징.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능력과 체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과 과정이 마음에 들어 동국대 한의학과를 지망한 학생들도 적지 않다. 본과 1학년인 정의현 씨는 “한의사가 되고 싶어 한의학과를 지망하면서 한의학만 일방적으로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라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서양의학적 지식까지도 접목시켜 유연한 사고력을 키워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동국대 한의학과는 다른 한의학과에 비해 양방과목 비중이 매우 높아 심도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캠퍼스를 옮겨가며 학업을 이어가는 것에도 장점이 있다. 한의대는 예과 2년, 본과 4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학생들은 본과 1년까지는 경주캠퍼스에서 공부를 하며 나머지 3년은 경기도 일산과 분당의 동국대 한방병원에서 수업과 임상실습을 받는다. 2016년부터 수도권에서 공부할 예정인 정의현 씨는 “선배들의 경험에 따르면 정서적으로 안정된 분위기의 경주에서 3년간 학문을 닦고, 나머지 3년간은 대도시에서 공부하다 보면 6년간의 학업 과정이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아서 좋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한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고시를 통과해야 하는데, 동국대 한의대생들은 최근 5년간 평균 99% 이상의 합격률을 보이고 있다. 한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졸업생들은 대부분 병·의원 등 보건 관련 분야에 취업하고 있다. 최근 3년간 평균 취업률은 79%.

졸업 첫해에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한방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밟거나, 남자들의 경우 병역 의무를 위해 3년간 공중보건한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또 대학원 진학은 졸업과 동시에 하기보다는 수련의 과정을 밟는 중간에 하거나, 개원 이후 한의원 경영에 안정을 찾은 이후에 이수하는 경향도 있다. 이외에도 기초 한의학 분야의 조교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되거나, 한의학 관련 연구기관, 의약학 관련 기업의 연구원, 보건의료 계통 공무원, WHO 전통의학분야 직원 등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간에서는 전국 각 지역에 한의사와 한의원이 넘쳐나는 등 포화상태에 이르러 한의대생들의 미래가 밝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한다. 이에 대해 이병욱 교수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의대생들이 한의사만 되겠다고 생각하면 활동 영역이 좁아질 수 있겠으나, 한의학과 연관된 분야는 앞으로 무한히 뻗어나갈 것이다. 한의학 지식을 활용한 신개념의 화장품 분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한국 인삼 등을 이용한 약품 개발, 한의학적 진단기기를 응용한 바이오 상품의 창출, 한류붐과 함께 한국 한의학의 세계시장 진출 등 한의학도들이 할 일이 많다. 학과가 학생들에게 전통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서양의학 지식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도 사회에 진출했을 때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졸업 후 다양한 학문 분야로 진출해 한의학과 타 영역과의 상생을 도모하는 졸업생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 교수의 말처럼 동서양 의학 지식을 고루 갖춘 한의대생들은 요즘 같은 융합학문의 시대에 활동영역이 늘어날 것이 틀림없다.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진단 및 치료 위주의 서양의학과,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로 보고 종합적인 진단 및 치료법을 구사하는 한의학 지식을 고루 갖춘 동국대 한의대생들은 한의학의 서양 진출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국대는 이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한의과대학(Dongguk University Los Angeles)을 설치해 한국 한의학의 세계화 전진기지를 구축해 놓고 있다. 한의과 대학이 있는 한국의 경주 캠퍼스와 미국 LA 캠퍼스 간 학문 교류도 조만간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이 학과에 입학하려면 성적은 어떠해야 할까. 동국대 한의학과의 모집 정원은 72명. 수시의 경우 학생부 교과 성적으로 뽑는 ‘일반1’에서 15명, 학생부 교과성적과 면접으로 뽑는 ‘일반 2’에서 15명, 학생부 교과성적으로 ‘지역인재’에서 10명을 뽑고, 나머지 32명은 정시(다군)에서 선발한다. 2015학년도의 경우 수능백분위 성적은 ‘일반1’이 평균 1.5, ‘일반2’가 1.3, 지역인재 2.9, 정시가 1.6이었다.

2015년 수시 면접평가에서는 한의학에 대한 관심 정도를 판단하는 질문(예를 들어 ‘동의보감에 대하여 아는 것을 말하시오’, ‘사상체질에 대하여 아는 것을 말하시오’, ‘본인이 생각하는 한의학의 미래는 무엇인가’ 등)과 고교 졸업 수준의 과학 지식을 테스트하는 질문이 많았다. 또한 한의사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심, 동국대가 중시하는 인성과 자비심 등도 정성평가의 중요 포인트다.

경주=안영배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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