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세미나
“함경 감사 등 상관 70% 충무공 지지… 임진왜란때 역량 발휘 기회 제공
위대한 인물로 남을 생태계 갖춰”
임진왜란 당시의 역사는 주로 당쟁의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기술돼 왔다. 그래서 충무공 이순신이 제대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시각은 이순신의 발탁과 성공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학계의 반성이다.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가 충무공탄신일(28일)을 앞두고 최근 개최한 세미나 ‘이순신 생태계를 꿈꾼다’는 이런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세미나에서 이순신 전문가들은 조선시대가 충무공을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로 남을 수 있게 한 정치 사회적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는 데 주목했다.
○ 이순신 모함 관료보다 도운 상관 더 많아
“충무공이 훈련원에 있을 때 병조판서 김귀영이 서녀(庶女)를 첩으로 주려고 했으나 공은 ‘벼슬길에 막 나온 내가 어찌 권세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까 보냐’면서 즉시 중매인을 돌려보냈다.”(노산 이은상 ‘이충무공전서’의 ‘행록’ 중에서)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은 논문 ‘이순신 생태계’에서 이런 일화를 소개하면서 “호의를 거절당한 병조판서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불쾌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이순신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기록은 없다”며 “원칙과 가치 지향적 삶을 살았던 이순신을 용인하고, 보호해주고, 기회를 준 건강한 관리 조직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순신이 32세 때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일 당시 이후백(李後白)이 감사 자격으로 변방의 장수들에게 여러 명목으로 가혹한 징벌을 주기 일쑤였다. 이순신은 그가 찾아오자 ‘사또의 형장이 너무 엄해 변방의 장수들이 손발을 둘 곳을 모른다’고 간언했다. 그러나 차관급 관리(이후백)는 말단 위관 장교(이순신)의 간언을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임 소장은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순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더 다행스러운 일은 이후백이 이런 건의를 용인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행록에 기록된 8개의 일화(앞서 소개된 2개의 일화 포함)에 등장하는 인물은 함경도 감사 이후백 등 11명 가운데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이순신을 용인하고 지지해준 사람은 8명이다. 적어도 70% 이상의 상관들이 이순신을 지지해 주었던 것이다. ○ “건강한 생태계 선진사회 만든다”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서 이순신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부분은 물론 있다. 노영구 국방대 군사전략학부 교수는 “선조 초반 동서 분당이 이루어지고 정여립 역모 사건을 계기로 붕당 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이순신도 이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순신 사후 선무공신 선정 과정에서 이순신과 원균의 전공이 거의 비슷하게 평가되면서 이순신이 최고의 전쟁 영웅으로 온전하게 평가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스스로 도울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하기도 했다. 정진술 해군사관학교 충무공연구회 자문위원은 ‘이순신을 도운 전라좌·우수영 사람들’이란 논문에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도운 전라좌·우수영 사람들은 대략 540여 명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정 위원은 “이순신은 출전 전에 허물을 보였던 장수라 할지라도 전공을 세우면 공정하게 평가하고 불편부당하게 지휘 통솔해 부하들이 따르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이순신은 주변에 건강한 관료적 사회적 생태계가 조성돼 있지 않았다면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행운아라고 볼 수 있다”며 “역사적 인물이 도태되지 않도록 올바른 사회 및 조직 환경을 갖추는 일은 선진일류 국가로 도약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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