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신라 사람들이 토우를 만든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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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 가득한 토우, 볼수록 즐거워요

신라인의 일상과 표정이 살아 있는 다양한 토우들. ① 할아버지 얼굴 ② 비파를 연주하는 사람 ③ 수줍어하는 여인 ④ 활 쏘는 사람과 동물이 장식된 토기.
신라인의 일상과 표정이 살아 있는 다양한 토우들. ① 할아버지 얼굴 ② 비파를 연주하는 사람 ③ 수줍어하는 여인 ④ 활 쏘는 사람과 동물이 장식된 토기.
바지저고리 입고 상투 튼 남자,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 가면을 쓴 채 춤을 추고 있는 사람, 배를 타고 노를 젓는 사람, 사냥하거나 고기 잡는 사람, 활을 쏘는 사람, 멧돼지를 사냥해 말안장에 싣고 가는 사람, 아이를 낳고 있는 여자,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

박물관에서 토우(土偶)라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5, 6세기 신라 무덤에서 발굴된 토우. 크기는 2∼10cm에 불과하지만 참으로 재미있고 독특한 모양입니다. 토우는 흙으로 만든 인형을 말합니다. 사람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 동물이나 집, 생활도구 등을 본떠 만든 것도 토우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 신라인의 살아 있는 얼굴 표정

신라 토우엔 익살 해학 낭만 등이 가득합니다. 그것은 얼굴 표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선 할아버지 얼굴 토우를 볼까요. 쓱쓱 주물러 얼굴 형태를 만들어 거기에 눈과 입을 슬쩍 파 놓고 수염 몇 가닥 그어 넣어 노인의 얼굴을 마무리했습니다. 단순한 흙덩이 토우지만 할아버지의 푸근함이 그대로 살아 전해 옵니다. 인자하고 편안한 얼굴이 아닐 수 없지요. 그래서 이 토우를 두고 한국인의 얼굴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토우의 얼굴 표정은 해맑고 익살스럽습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유쾌한 미소를 짓게 하지요. 두 손을 모으고 얼굴을 약간 치켜든 채 목청껏 노래 부르는 모습, 엉거주춤 서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신라인의 낭만적인 삶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들입니다. 노래하는 토우, 연주하는 토우도 흥겹고 익살맞은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토우를 통해 음악과 춤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지요. 팔과 양발을 벌리거나 흔들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표현한 토우도 적지 않아요. 자신의 팔뚝보다 더 긴 피리를 불고 있는 사람 토우도 있어요. 항아리에도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 토우가 붙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얼굴 표정은 모두 경쾌하고 편안하답니다.

○ 신라인의 다양한 일상

이러한 표현은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신라 토우의 살아 숨쉬는 얼굴 표정은 1500여 년 전 신라인의 삶에 대한 밀착과 애정, 삶을 즐기는 여유와 낭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슬픔의 표현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산 중인 여인 토우와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토우에서는 신라 사람들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답니다. 출산 중인 여인 토우는 입과 눈을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출산의 고통을 극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슬픔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는 일. 신라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죽은 사람을 떠나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토우를 만들어 무덤 속에 부장했던 것이지요.

신라 토우는 삶과 죽음, 노동, 춤과 음악, 성(性)과 사랑 등 신라인들의 일상을 그대로 담아 냈습니다. 그 다양한 일상이 그저 놀라울 뿐이지요. 따라서 토우는 신라인들의 일상과 내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 단순함 속의 생명력

신라 토우는 모두가 단순합니다. 손으로 몇 번 흙을 쓱쓱 주물러 만든 것이기 때문이지요. 작게 만들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단순하지 않습니다. 단순함 속에도 표정이 잘 살아 있다는 말이지요.

인물 토우를 보면, 손톱으로 쿡쿡 찍은 두 눈만으로도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손톱으로 슬쩍 찍어 넣어 슬픔을 나타내고 눈과 입을 동그랗게 파내서 기쁨을 표현했지요. 경북 경주 금녕총에서 출토된 배 모양 토기에 붙어 있는 벌거벗은 남성 토우는 쓱 내민 혓바닥 하나로 노 젓기의 피곤함을 잘 드러냈답니다.

작고 단순한 토우지만 이렇게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의 상황과 특성을 예리하게 포착했습니다. 여인상의 경우, 얼굴만으로는 남녀 구분이 잘 되지 않지만 가슴이나 엉덩이 등을 과장하거나 강조함으로써 여성임을 나타냈지요. 얼굴에 표정이 없을지라도 몸을 쪼그려 엎드린 모습이나 머리를 푹 숙인 자세만으로 주인공이 슬픔에 빠져 통곡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신라 토우는 그 단순함 속에 역동감을 품고 있습니다. 역동감을 달리 말하면 생명력이지요. 작은 토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라인들의 삶에 대한 관찰과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신라 토우는 여러모로 매력적입니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보면 볼수록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해 줍니다.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 줍니다. 앞으로 박물관에서 토우를 눈여겨보면 어떨까요. 거기 1500년 전 신라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될 겁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신라#토우#얼굴 표정#단순함#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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