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조 원 투자했지만…학부모들 “어린이집 정부 평가 못 믿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4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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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시에 사는 주부 최진선 씨(31)는 지난해 초 세 살짜리 아들이 다닐 어린이집을 알아봤지만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서 결정을 내리는 데 애를 먹었다.

‘어린이집 정보공개포털’ 등 홈페이지에는 보건복지부 평가인증 점수가 대부분 90점 이상(100점 만점)이라고 나와 있었지만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점수는 믿을 게 못 된다”는 글이 가득했다. 주민센터, 구청에 문의했지만 “보육료 전액을 지원한다”는 대답 말고는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다. 최 씨는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선 별 일이 없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 각종 복지 제도가 시행되면서 복지 예산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0조 원을 돌파했지만, 이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따지는 인증 및 평가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앞 다퉈 각종 무상복지 제도를 도입하다 보니 재정지출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재정 투입의 성과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 효과가 없는 제도는 과감히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18조 투입하면서 성과평가는 허술

정부는 올해 영유아 보육료 지원에 3조 원을 투입한다. 만 0세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학부모에게는 아이사랑카드를 통해 월 40만6000원을 지급하고 어린이집에는 37만2000원을 지급한다. 올해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지방 매칭사업(중앙과 지방정부가 일정 비율로 함께 지원) 가운데 가장 많은 재정이 투입되는 분야가 무상보육이다.

하지만 무상보육 대한 성과평가 지표는 단 두 개에 불과하다. 시간연장보육 제공기관 수와 보육료 지원 만족도가 그것이다. 정부가 설문조사 형식으로 실시하는 ‘보육료 지원 만족도’ 조사에서 65% 이상이 만족하고 전국 4만3936개(2014년 3월 기준) 어린이집 중 8861곳(20.2%)에서 시간연장 보육을 제공하면 이 사업은 ‘만점’ 평가를 받는다. 보육료가 어린이집에서 제대로 쓰였는지,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등은 평가에서 제외된다.

다른 복지 사업도 사정이 비슷하다. 기초연금의 경우 수급 예상자 중 98%가 연금을 받으면 성과를 거둔 것으로 인정한다. 통계에 중대한 오류가 발생하거나 집행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으면 무난히 달성할 수 있는 ‘있으나 마나’한 목표다.

정부의 성과평가는 예산을 집행 과정에서 당초 계획한 목표를 달성했는지 측정하는 중요한 사후측정 수단이다. 연구개발(R&D) 사업 상당수는 △과제당 매출 발생액 △지적재산권 발생건수 △사업화 성공률 등을 수치로 계산해 애초 설정했던 목표에 못 미치면 이듬해 예산을 편성할 때 규모를 줄이거나 사업 자체를 없애 버린다.

하지만 복지 사업은 이 같은 평가의 ‘사각지대’다. 기획재정부가 2013년에 복지 사업 중 처음으로 대통령 공약인 ‘저소득층 기저귀·분유 지원 사업’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이 넘도록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일부 사업에 대해 성과평가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사업 향방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며 “재정당국과 보건복지부가 협력해 복지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평가 결과와 재정 지원 연계해야

복지를 현장에서 집행하는 시설에 대한 평가 체계도 부실하다. 무엇보다 평가 점수와 재정 지원이 연계돼 있지 않다 보니 시설을 개선하고 서비스 수준을 높일 유인책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어린이집의 경우 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보육진흥원이 평가인증을 맡고 있다. 인증을 받은 어린이집의 80% 이상이 90점 이상이기 때문에 수요자들이 어린이집을 선택하는데 참고할 지표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진행한 평가가 재정 지원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지금은 점수와 상관없이 모든 어린이집이 0~2세 원생 한 명 당 월 11만8000~37만2000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학부모들이 아이사랑카드를 통해 직접 받는 보육료와는 별개다.

선진국은 재정지원과 평가를 강력하게 연계하는 식으로 재정 누수를 막고 복지의 질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호주는 정부 인증을 받은 어린이집에 다닐 때만 부모가 양육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보육시설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모에 대해서도 소득과 취업 여부는 물론 구직활동이나 직업훈련을 하는지 등에 따라 최대 3배까지 보육료 지원액에 차이가 난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당장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평가는 서류심사에 머무르고 그나마도 일회성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평가를 전담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한편 예산 집행과의 강력한 연계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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