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firm&Biz]대법 “더 나은 사법 서비스 제공위해 상고법원 도입돼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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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상고법원 추진
대법관 1명당 年3000여건 사건 맡아
양질의 사법 서비스 제공받기 어려워
일부선 “재판 불평등 생길 것” 우려

‘하루 8.7건, 한 달 216.5건, 한 해 3137.7건.’

지난해 대법관 1명에게 배당된 평균 사건 수다. 1년 동안 대법관 12명으로 구성된 대법원 재판부에 최종 판결을 청한 사건은 3만7652건으로 헌법이 공포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판을 받는 국민은 대법원이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사건을 치밀하게 검토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2심에 불복해 상고를 하겠지만 지금대로라면 양질의 사법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2년 넘게 대법원에 묶인 사건만 788건


판사 출신인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상고법원 설치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대법원이 본래 역할인 통일적 법령 해석 기능을 강화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사회적으로 합당한 가치 기준을 제시하는 데 충실할 수 있도록 3심을 다루는 상고법원을 별도로 만들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고법원 제도는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법리적 통일성에 대한 고도의 판단이 필요하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은 대법원이 직접 맡고, 신속하고 충실한 권리구제가 필요한 사건은 상고법원이 맡는 시스템이다. 최근 대법원 상고 사건이 폭증하면서 대법원에 접수된 지 2년이 넘도록 최종 판결을 받지 못한 사건이 2013년 788건이나 됐다. 국민들 사이에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고법원이 생기면 신속하고 충실한 3심 재판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법원에 재판을 청구하는 사건 3만8000여 건 중 8000여 건은 심리불속행 제도에 따라 판결문에 제대로 된 이유도 적히지 않은 채 기각처리 됐다. 대법원은 상고법원이 생기면 심리불속행 제도를 폐지해 모든 판결문에 상고 기각 사유를 기재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대법원 상고 사건 당사자는 재판부 앞에서 자기주장을 펼칠 수 없었다. 상고법원은 필요 시 당사자의 변론을 직접 들어 법적 쟁점을 꼼꼼히 따져 재판하겠다는 취지다. 또 특허나 조세 등 복잡한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재판부를 별도로 설치할 예정이다.

상고법원이 생기면 대법원은 매년 20차례 안팎에 그쳤던 전원합의체 판결을 대폭 늘릴 수 있게 된다. 대법원의 본래 목적에 맞게 대다수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나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된 판결에 대한 논의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고법원은 사법 서비스의 질적 향상”

하지만 상고법원 설립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민 다수는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에서 마지막 판단을 받아보고 싶어 하는데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상고법원에서 마지막 재판을 받는 데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절도나 사기 같은 서민 사건은 상고법원이 맡고 정치인이나 기업가처럼 힘 있는 사람 사건은 대법원이 재판하는 불평등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대법원은 모든 상고심 사건에 대해 대법관이 직접 심사해 분류하는 방식을 통해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게 현실적으로 더 나은 사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관 1명이 한 해 3000건이 넘는 사건을 맡아야 하는 현행 체계에서는 모든 개별 사건을 신중하고 정밀하게 들여다보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상고법원이 생기면 사법체계가 ‘4심제’로 변질돼 도리어 재판이 길어지고 복잡해진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상고법원 설치 법안에는 헌법에 위배되거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 상고법원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특별상고제도’를 두고 있다. 하지만 경력 15년 이상의 법관 4명씩으로 구성된 상고법원 재판부에서 헌법이나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극히 미미하다는 게 대법원 설명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특별상고 제도는 예외적으로 확정 판결에 대해 다시 재판하는 현행 재심 제도와 거의 유사해 4심제라는 비판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상고법원 자체가 위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모든 국민은 3심제 체제에서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판단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상고법원이 생기면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07년 “대법원이 최고법원이라 해서 모든 사건을 상고심으로서 관할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라며 “심급제도는 입법자의 형성의 자유에 속하므로 국회의 논의를 거쳐 상고심을 담당할 별도 법원을 만드는 게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과 무관하다”고 결론내리는 등 수차례에 걸쳐 상고법원 설치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대법관 수십 명 되면 전원합의체 사실상 불가”

법조계에서는 상고법원 대신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대법관 수를 늘리면 재판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일부에서는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립을 추진하는 게 대법관 수를 유지해 독점적 권위를 지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한 해 3만8000여 건에 가까운 재판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관 몇 명 늘린다고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대법관 수를 두 배로 늘린다 해도 1명당 1년에 1600건 가까운 재판을 맡아야 하고, 국회 청문회도 매월 한 차례씩 해야 돼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것이다. 헌법은 모든 상고심 판사를 국회 동의나 대통령 임명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고 있다. 상고법원 판사는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이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임명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상고법원 법관이 128명(2012년 기준)인 독일의 사례를 들어 대법관 증원론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독일은 전체 법관이 2만411명으로 한국(2738명)보다 7배 넘게 많다. 법관 1인당 인구 수도 독일이 4013명인 반면 한국은 1만8450명에 이른다. 게다가 독일은 상고심에 올리는 사건을 엄격히 선별하는 상고허가제를 운영하고 있다.

대법관이 대거 증원되면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모두 참여하고 판결문에 소수의견도 적지만 법관 4명씩 단위를 이루는 소부는 소수 의견을 쓰지 않는다. 대법관 수가 늘어나면 소부 수도 늘어나 대법원에서 통일된 법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진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보면 하나의 합의체를 구성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15명”이라며 “대법관이 수십 명이 되면 소부에서 거의 모든 사건을 처리하게 돼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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