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날치기 사건’ 모의 훈련…‘그물망’ 수색 작업 합격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7일 21시 51분


숨이 차고 식은땀이 흐른다.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 뒤 신발이 보이지 않도록 좌변기 위로 올라갔다. 인기척이 없자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변기에서 내려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방심은 화근이 됐다. 무전 소리와 함께 경찰이 들이닥쳤고 화장실 안에 숨어있던 나를 발견했다. “당장 나오세요”라는 경고에 체념한 나는 문을 열었고 양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기자는 16일 경찰의 ‘불시 위기대응 훈련’에 참가해 절도범 역할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9월 구은수 청장 부임 후 매월 16일 민생범죄 발생상황 등을 가정해 사전 통보 없이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응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날은 설 연휴에 대비해 지역 새마을금고에 침입한 범인들이 2000만 원을 훔친 ‘날치기 사건’을 가장한 훈련을 했다. 꼼꼼한 용의자 수색 작업은 합격점이었지만, 용의 차량 파악과 초동조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초동대처는 미흡, 범인 차량 정보 파악도 느려”

오후 3시 55분 범인 역할을 맡은 기자와 경찰은 서울 강북구의 새마을금고를 나와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 새마을금고의 신고를 받고 1분 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파악했다. 무전을 통해 “흰색 아반떼 차량. 용의자는 40대 남자, 안경 낀 남자 등”이라는 내용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도주 예상 경로에 경찰들이 긴급 배치되고 차량 번호도 전파됐지만 도주 차량을 제지하는 경찰은 없었다. 이 때문에 도주 차량은 40여분 간 자유롭게 범행 현장 인근을 돌아다녔다. 순찰에 나선 경찰들은 무전에 귀를 기울이느라 차량을 확인하지 못했고, 검문검색도 실시하지 않았다. 4대의 순찰차가 도주 차량과 마주쳤지만 앞을 막아서는 순찰차는 없었다. 이 때문에 도주 차량이 지방으로 향했다면 범인 검거는 장기화될 수도 있었다.

상황실의 부정확한 정보 전파도 혼란을 가중시켰다. 실제 도주 차량은 은색이었지만 상황실은 ‘흰색’과 ‘은색’을 번갈아 전파했다. 최초 신고자의 정보가 틀려 수사에 혼선이 온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 진술이 틀린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건 현장의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용의 차량을 재차 확인했고 이후 정정된 내용을 전파했다”고 말했다.

●‘그물망’ 수색 작업은 합격점

도주극은 시민의 결정적 제보로 막을 내렸다. 본보 취재진은 오후 4시 30분경 시민을 가장해 “신원불상의 남자 3명이 서울 도봉구 창원초등학교 앞 인도에 차를 세운 채 돈을 나누고 있다”고 112에 신고했다.

차량 위치를 파악한 경찰은 신속하게 용의자 검거에 돌입했다. 4시 39분 창원초등학교 앞으로 경찰차 한 대가 도착했고 경찰 한 명이 삼단봉을 들고 달려왔다. 기자는 차량 뒷문을 열고 인근 아파트 단지를 향해 내달렸다. 아파트 상가 건물에 도착한 뒤에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 화장실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경찰의 신속한 추적과 철저한 수색으로 5분 만에 검거 됐다. 경찰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용의자가 포착된 지점 인근을 도피처로 생각하고 상가건물을 특정해 수색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훈련에서는 경찰 검거 과정의 장단점이 모두 드러났다. 구 청장은 “사건 발생 이후 순찰차 배치는 문제가 없었지만 용의차량 특정이 쉽지 않았다. 이 능력을 좀 더 키워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훈련에서 드러났듯이 범인 검거 및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정윤철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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