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 켜고 하나 둘 셋” 3초만 여유있게 운전하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6일 16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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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경기 성남시에선 끼어들기 하다 시비가 붙어 가스총을 꺼내든 운전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분명히 방향지시등을 켜고 들어갔는데 경적을 길게 울려 화가 났다”는 게 가스총을 꺼낸 운전자의 주장이다.

반면 피해 운전자는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차선을 끼어들어왔다”고 맞서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는 습성이 있는 한국에선 차로를 이리저리 바꾸는 운전이 아직도 일상적이다. ‘나도 빨리 가야지’라는 생각은 정상적으로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로를 바꾸려는 차량에게도 경적 소음을 퍼부으며 양보하지 않는 행태를 낳기도 한다. 이런 행태는 다시 운전자가 ‘아예 방향지시등 켜지말고 확 끼어들어야지’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방향지시등을 제대로 쓰지 않아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수준이다. 교통사고를 줄이고 상대방의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 첫단추, 바로 방향지시등이다.

● “깜빡이 켜고 하나 둘 셋!”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좌·우회전, U턴, 차로변경 할 때는 해당 지점에 이르기 30m(고속도로는 100m) 전부터 방향을 바꿀 때까지 방향지시등을 켜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 운전자들은 1~2초 잠깐 방향지시등을 켜는 데 그친다. 아예 켜지 않는 운전자도 수두룩하다.
전문가들은 ‘3초의 여유’를 강조했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방향지시등을 켜면 그 차량이 어디로 가려는지 쉽게 알 수 있어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인다”며 “3초만 여유있게 운전하면 차로 변경 차량이나 양보차량 모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향을 바꾸려는 운전자는 지시등을 켜고 3초 뒤에 진입을 시작하고 양보차량은 지시등을 보면 3초 내에 속도를 줄여 앞차를 끼워주자는 말이다.

운전자가 전방의 교통 상황을 보고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려놓는데 걸리는 시간은 0.75~1초, 여기에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차가 속도를 줄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2초 이상으로 본다. 영국·스웨덴 등 교통선진국은 기본적인 교통안전 수칙으로 3초 안에 앞차에 닿기 어려울 만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3초 거리 룰’을 강조하고 있다.

차로 변경 시에는 운전자가 고개를 돌려 사각지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자동차 사이드미러나 룸미러로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방향지시등과 함께 빠르게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운전습관이 중요하다.

‘도로는 남과 함께 사용하는 공적공간’이란 인식도 필요하다. 안주석 국회교통안전포럼 사무처장은 “일부 운전자는 도로가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운전자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며 “방향지시등 켜기 등을 습관화화면서 남과 함께 안전하게 주행하자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배려와 안전의 시작

전문가 지적처럼 방향지시등은 다른 운전자를 위한 배려의 신호다. 운전자는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방향지시등을 작동해야 한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진로를 변경한 운전자에게는 범칙금 3만 원(승용차)이 부과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진로변경, 좌·우회전, U턴, 앞지르기 등 방향지시등이 쓰이는 상황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비율은 2013년 전체 교통사고 21만5354건의 33.3%인 7만1615건에 달했다. 이 중 방향지시등을 아예 켜지 않거나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가 상당수다. 박영수 경찰청 교통기획계장은 “방향전환이나 진로변경 때 지시등을 켜지 않아 나는 사고가 실제 상당히 많다”며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으면 주변 차량이 신속히 반응하기 어려워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실제 도로에서 운전자들의 방향지시등 점등 실태는 어떨까. 본보 취재팀이 16~18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교차로·중구 시청 앞 교차로·용산구 한강대교 북단교차로 등 3곳을 관찰한 결과 절반 이상의 운전자(57.7%)가 방향지시등을 제대로 켜지 않았다. 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지난해 방향지시등 점등률(64.9%)보다도 낮았다. 재래시장과 기차역이 위치해 서울 시내 상습정체 구간으로 손꼽히는 청량리역 사거리의 방향지시등 점등률은 특히 저조했다. 취재진이 1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 좌·우회전을 한 차량 122대 중 방향지시등을 켠 차량은 18대(14.8%)에 불과했다.

도로 위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취재팀이 직접 자동차를 몰고 1시간 동안 서울도심 약 20km를 주행하는데 기자의 앞에 끼어든 32대 차량 중 방향지시등을 제대로 켠 차량은 4대에 불과했다. 나머지 28대 중 끼어들기와 동시에 방향지시등을 형식적으로 2~3회 켠 차량이 20대, 아예 켜지 않은 차량이 8대였다. 이날 동행한 임채홍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운전자들 간에 방향지시등을 통한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지시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배려해주려는 생각없이 그저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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