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사제사랑이 소중한 추억 만들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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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교직생활 체험을 박물관으로 정리한 원로교육자 박연묵선생

‘박연묵 교육박물관’의 박연묵 관장(왼쪽)이 2일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오른쪽)에게 자신의 일기장과 비망록 등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박연묵 교육박물관’의 박연묵 관장(왼쪽)이 2일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오른쪽)에게 자신의 일기장과 비망록 등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선생님이 제자와의 소중한 ‘인연’을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피고 가르치면 그것이 바로 소중한 ‘추억’이 되는 법입니다.”

개천절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4시 반, 경남 사천시 용현면 신복리 332 ‘박연묵 교육박물관’ 마당. 경남 교육계를 이끌고 있는 박종훈 교육감과 심재소 경남교육청 총무과장, 허인수 비서실장, 금문수 사천교육장과 이 지역 출신 박정열 도의원 그리고 10여 명의 교육청 및 사천시 관계자 등이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다. 궁금한 대목에선 질문도 던졌다. 모두 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특별 수업’에 나선 주인공은 박물관장인 박연묵 선생(80). 그는 진주고와 진주교대 교원양성소를 나와 1968년 경남 통영시 노대초등학교를 시작으로 1999년 사천초등학교에서 퇴직하기까지 31년을 평교사로 근무했다.

박 선생은 자신의 집을 손수 다듬고 정리해 만든 10개의 전시관을 꼼꼼하게 소개했다. 1940년대 지은 박 선생의 자택은 제1전시관인 ‘교사시절의 집’에서부터 제2전시관인 ‘학창시절의 방’, 제3전시관인 ‘의류 수예 소품방’, 제4전시관인 ‘책방’ 등으로 이어진다. 집과 야외학습장을 합치면 1만 m²로 꽤 넓지만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다소 초라한 시설이다.

이들 공간에는 손때 묻은 초등(국민)학교 1학년 교과서와 참고서, 학용품이 잘 정리돼 있다. 여행 및 졸업사진, 학생들의 작품, 상담일지도 40여 년의 세월을 건너 ‘현직’들 곁으로 다가와 가르침을 준다. 제자들과 찍은 빛바랜 졸업사진에는 학생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적어 두었다. 담임을 맡았던 학생 명부에는 1300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부모 이름과 연락처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묻어난다. 62년 동안 쓴 박 선생의 일기장은 2010년 국제기록문화 전시회에 나들이도 했다. 2011년엔 이경옥 국가기록원장이 박 선생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고마움을 표했다. 교육박물관을 연구한 논문도 나왔다. 경남대 배선영 씨의 ‘개인 일상 아카이브의 분류와 기술-박연묵 교육박물관을 중심으로-’라는 석사논문(2013년)이다.

박 선생이 제자, 동료 교사들과 주고받은 편지 수천 통도 보관돼 있다. 그는 편지를 보낼 때마다 먹지를 이용해 사본을 남겼다. ‘교육의 현장과 역사’를 더듬을 수 있는 자료는 약 4000점. 그가 손님들을 안내하다 간식을 챙겨온 부인 최막달 여사(79)를 향해 “돈 안 되는 일만 하다 보니 지금도 저 사람과 티격태격 싸운다”며 해맑게 웃었다.

‘농기구의 집’과 ‘우마차고(牛馬車庫)’ ‘추억의 집’ ‘그림의 집’을 지나 집 뒤편으로 나가면 넓은 야외학습장이 나온다. 수많은 과실수와 약초, 꽃나무 등이 심겨 있다. 이름표도 달아 두었다. 바로 옆엔 보호수로 지정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버티고 섰다. 박 선생은 “자료를 관리 보존하기 위한 시설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사들의 체험프로그램에 이 박물관을 포함시켜 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박 교육감은 “선생님 말씀을 잘 알겠다”고 답했다. 경남도교육청은 내년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분류와 정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경남교육역사(기록)박물관’을 세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평생 교육을 위해 살았던 사람’으로만 기억되기를 바라는 퇴직 원로 교사의 오랜 꿈이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 055-834-0571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박연묵#박연묵 교육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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