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전북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구역 통합을 묻는 주민투표에서 반대 우세로 통합이 무산되자 전북도와 전주시, 완주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을 크게 빗나간 결과이기 때문이다. 개표가 진행되던 26일 저녁 전주시장과 완주군수는 생방송 토론회에 출연해 통합을 전제로 향후 계획을 밝히다가 반대가 우세한 결과를 확인하고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전북도는 통합이 될 것으로 보고 27일 오전 열려던 ‘전주·완주 상생발전협의회’와 브리핑을 급히 취소했다. 투표율이 50%를 넘으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일부 있었지만 개표 직전까지 각종 여론조사와 전체 분위기는 이번에는 통합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반대가 55%로 찬성(44.4%)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당초 반대가 심했던 지역뿐 아니라 전 지역에서 고르게 반대가 우세했다.
전주시와 완주군은 1992년 이후 20여 년 동안 통합 논의를 해왔으나 번번이 무산됐으며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당분간 통합은 거론하기 어려워졌다.
○ 반대 측 막판 감성 호소 먹혀
투표 결과는 완주군민들이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변수 없는 현재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농업 복지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통합 이후가 현재보다 낫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선거 막판에 통합되면 완주가 푸대접 받는다는 ‘서자(庶子)론’이 주민들 사이에 먹혀들었다는 분석이 있다. 통합되면 자녀들의 학군이 불리해진다거나 도시 아이들과 경쟁하게 돼 교육 역차별을 받는다는 등 반대 측의 감성적 호소도 주민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통합이 결정되기도 전에 통합시 명칭을 ‘전주시’로 미리 결정하거나 통합시 청사용지와 시공사까지 선정한 것도 행정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는 거부감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양 자치단체는 “통합이 결정되면 시간이 촉박하고 통합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라고 사전 선정 이유를 밝혔지만 반대 측은 “통합 청사 위치 등은 통합이 결정된 이후 심의하도록 한 특별법을 위반했다”며 반발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송하진 전주시장은 도지사에, 임정엽 완주군수는 통합 전주시장에 출마한다’는 설이 파다한 상태에서 송 시장의 통합시장 불출마 선언이 순수하지 않게 비쳤고 오히려 독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국영석 통합반대 완주대책위원장은 “몇몇 정치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독단적이고 인위적으로 통합이 추진된 만큼 통합 무산은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김제-완주가 지역구인 민주당 최규성 국회의원이 전주·완주가 통합되면 다음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이 통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많다. 김제 출신인 최 의원은 19대 총선 당시 김제에서는 52.71%를 얻었지만 완주에서 57.72%를 얻어 완주군에서 강세를 보였다. 완주군이 없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 전주시장 완주군수 정치적 행보에 타격
통합 무산으로 통합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송 시장과 임 군수는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두 지역이 통합되면 송 시장은 도지사직에, 임 군수는 통합 시장직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돼 왔기 때문이다. 통합 시장 불출마와 정치적 책임을 약속한 재선의 송 시장은 운신의 폭이 좁아진 셈이다. 역시 재선의 임 군수도 정치적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번 주민투표 반대를 주도한 인물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완주군수 후보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또 새 통합 청사 건립을 추진하면서 들어간 용역비 등 수십억 원의 예산이 날아갈 상황이고 전주·완주 시내버스 단일화로 전주시의 재정부담도 늘어나게 됐다. 종합스포츠타운 건설, 위락단지 조성, 농산물 도매시장 이전 등 통합을 전제로 한 20여 개 상생사업도 취소되거나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무엇보다 통합 추진과정에서 찬반으로 극명하게 나뉘어 갈등을 빚어온 완주군민들의 민심을 모으고 골을 메우는 작업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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