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또만나/반또 칼럼]‘야구여신’ 아나운서, 그 까다로운 조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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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벼락 맞아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KBSN 정인영 아나운서는 수많은 관중과 시청자 앞에서 난데없는 물벼락을 맞은 뒤 카메라 앞에 서서 이렇게 사과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야구 여신(女神)이 감수해야 할 일이 또 하나 늘어났다는 생각을 했다. ‘마이크를 든 채 물을 뒤집어써도, 경기 내내 공들여 정리했던 취재 노트와 옷이 다 젖어도 절대 화를 내거나 얼굴을 찡그려선 안 됨.’

야구팬들이 야구 여신에게 요구하는 ‘여신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우선 얼굴과 몸을 예쁘고 날씬하게 가꿔야 한다. 야구 여신의 신성(神性)은 미모에서 나오는 거다. 패션에 있어서는 세련미를 자랑하되, ‘아찔 각선미’나 ‘노출 의상 연일 화제’라는 정도의 반응이 나오게끔 연출하는 편이 좋다. 그래도 연예인이 아닌 아나운서니까 품격은 있어야 한다. ‘과한 노출에 시청자 눈살’ ‘란제리룩 민망’이라는 기사가 나와서는 일을 그르치게 된다.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필수다. 야구 여신이 되는 데 있어서 야구 지식이 미모에 비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야구팬들이 ‘얼굴만 예쁘고 야구는 모르는 아나운서’를 야구 여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야구선수와 사귈 생각이 있느냐”는 인터뷰 질문에도 능숙하게 답해야 한다. “없다”고 말하면서도 슬쩍 여지를 남기는 게 장원급제감이다. 야구팬들의 기대를 너무 망쳐선 안 된다. TV 토크쇼에 나가서는 야구선수들의 ‘대시’ 유형 정도는 소개하며 너스레를 떨 줄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애교 축에 속한다. 얼마 전에는 각 스포츠 전문채널 간판 아나운서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통째로 ‘털려’ 인터넷에 공개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매년 발간하는 야구 관계자 수첩에 등록된 번호가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방송사도, 팬도 여신에게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실제로는 여자 아나운서들의 성적 매력을 소비하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한다. 때론 여신들 스스로도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저널리스트의 자존심을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조차 인기 스타로 뜨고 싶다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날씨 여신’이라 불리는 기상캐스터도 비슷한 처지에 있지만 남성 팬들이 더 많은 세계에서 활동하는 야구 여신들이 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연 700만 관중을 돌파한 프로야구 무대에서 통산 홈런, 안타 기록 하나 없이 신으로 살기란 애초부터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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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여신#정인영#물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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