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부부간에도 강간죄 성립”… 43년만에 판례 뒤집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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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위협해 성관계한 남편 유죄 확정

정상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상태라도 남편이 아내를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면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실질적 부부관계가 유지될 때는 강제 성관계를 맺었다 해도 처벌할 수 없다”는 1970년 3월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세 차례 강제 성관계를 맺은 혐의(특수강간 등)로 기소된 강모 씨(45)에게 징역 3년 6개월에 신상공개 7년,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16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형법상 강간죄의 대상인 ‘부녀(婦女)’는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상관없이 여성을 가리킨다”며 “법률에 아내를 부녀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없는 만큼 아내도 강간죄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1995년 형법이 개정되면서 강간죄를 포괄하는 죄목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었는데 이는 법이 보호하려는 권리가 ‘여성의 정조 또는 성적 순결’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며 “민법상 동거의무에 성생활 의무가 포함됐다고 하더라도 폭행·협박에 의해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까지 포함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강 씨는 2001년 결혼한 아내와 불화를 겪던 중 2011년 11월 밤늦게 귀가한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성관계를 맺는 등 한 달간 3차례에 걸쳐 강제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번 판결은 남편이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강제 성관계를 맺은 개별 사건에 대한 판단이지만 비슷한 유형의 사건에서 기소 및 유무죄 판단에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한 궁금증을 Q&A 형식으로 풀어봤다.

Q. 남편 강 씨는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강제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먹으로 아내를 폭행하거나 폭언을 해 강제 성관계를 맺었을 때도 똑같이 처벌받나요?

A. 부부 강간죄를 인정할 수 있는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강간 범죄와 비슷한 기준(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 △성관계 의무를 포함하는 혼인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일반적인 강간보다 더 심한 폭행이나 협박에 한해 강간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 △부부간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더 큰 만큼 폭행 및 협박이 심하지 않아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이번 판결은 ‘부부간 강간’도 법원이 처벌할 수 있다는 대원칙을 세운 것일 뿐 어떤 행위가 강간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흉기를 사용한 사건이라면 이번 판결처럼 유죄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지만 주먹으로 때리거나 폭언을 한 사건에 대해서는 향후 관련 사건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고 구체적인 판례가 쌓여야 처벌 여부를 따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Q. “정상적인 혼인관계라도 부부 강간을 처벌할 수 있다”고 했는데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혼 상태의 부부인 경우에는 어떻게 되나요? 또 이혼을 앞둔 부부는 어떤가요?

A. ‘정상적인 혼인관계’라는 것은 배우자 양측의 이혼 의사가 합치되지 않은 상태로 법률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배우자 중 어느 한쪽이 이혼 의사를 가지고 있어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정상적인 혼인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부부’이기 때문이지요. 사실혼의 경우 민사소송에서 혼인관계에 준해 판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부간 강간’과 같은 형사사건에 이런 원칙을 동일하게 적용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또한 관련 사건에 대한 소송이 제기돼 법원의 엄밀한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는 확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혼 의사가 합치된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를 폭행 또는 협박해 강제 성관계를 맺었다면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는 이미 있습니다. 대법원이 2009년 2월에 내린 판결이지요.

Q. 아내가 남편을 강간한 경우에도 처벌을 받나요?

A. 지난해 12월 개정된 형법에 따라 6월 19일부터 형법 297조에 규정된 강간죄의 주체가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에서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로 바뀝니다. 강간죄의 대상이 ‘부녀’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6월 19일부터는 남편을 폭행하거나 협박해 강제 성관계를 맺은 아내도 똑같이 강간죄로 처벌됩니다. 그 전까지는 아내만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Q. 부부 강간죄를 처벌하는 데 반대 견해는 없었나요?

A.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이상훈 김용덕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강간의 사전적 의미는 ‘강제적인 간음’인데 ‘간음’은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이어서 아내를 강간죄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 대법관은 ‘부부간 강간’을 폭행이나 협박죄로 처벌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습니다.

Q.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었나요?

A. 반대 의견 가운데는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우려된다” “부부 강간죄가 배우자에 대한 감정적 보복 수단이나 이혼 및 재산 분할에서의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가정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부부간 신뢰관계를 파괴한다”는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하지만 “법리 논의를 거친 결과 강간죄의 대상이 되는 ‘부녀’에 아내가 포함되는 데다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와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시대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게 됐다”고 대법원은 밝혔습니다.

Q. 외국은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나요?

A. 미국 대부분 주와 영국 프랑스 독일은 부부간 강간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은 “혼인관계의 실질적인 파탄이 없는 한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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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강간죄#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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