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나선 자원봉사자들 화마가 할퀴고 간 현장은 참혹했다. 11일 포항 북구 용흥동 우미골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산불로 잿더미로 변한 주택을 철거하고 있다. 포항시 제공
“정든 집이 사라져 버렸어.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 현대아파트 뒤쪽 우미골 주민 박모 씨(67)는 11일 잿더미로 변한 집 안에 혹시 쓸 만한 물건이 있을까 살펴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불이 집을 덮칠 때 얼마나 가슴이 뛰고 놀랐는지 모른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마을은 9일 발생한 산불로 전체 100여 채 중 28채가 폐허로 변했다. 야산과 인접해 가장 피해가 컸다. 이재민들은 부근 경로당이나 친척 집으로 대피해야만 했다. 북구 학산동 일대도 직격탄을 맞았다. 주민들은 골목 곳곳에 남아 있는 산불 흔적을 지우기 위해 청소를 하면서도 공포의 순간을 잊지 못했다. 한 주민은 “옷가지 하나 제대로 못 챙기고 대피했다. 멀리서 집이 불타는 걸 지켜보며 가슴이 무너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큰 산불이 나고 사흘이 지났지만 상처는 여전하다. 지붕은 폭격을 맞은 듯 내려앉았고 담벼락은 온통 시커멓게 그을렸다. 북구 중앙동 주민 김모 씨(48)는 “도심 공원 역할을 하던 산들이 불쏘시개가 돼 주택을 덮칠 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이번 산불로 15명의 사상자가 났고 주택 58채가 불에 타 주민 118명이 졸지에 이재민 신세가 됐다. 정밀 조사가 이뤄지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포항시는 피해 복구와 이재민 보호 등을 위한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정병윤 부시장이 본부장을 맡고 재난상황총괄반과 행정지원반, 구호대책반 등 4개 대책반을 구성했다. 포항시 직원의 절반인 1000여 명과 해병대 1사단 장병 500여 명, 자원봉사자 250여 명 등이 용흥동과 우창동, 중앙동 피해 지역에 집중 투입되고 있다. 시는 부서진 주택과 상가 등의 피해를 조사해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이재민은 원룸을 빌려 임시 거주토록 하면서 주택 수리를 최대한 빨리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정부 특별교부세 15억 원과 성금 등으로 경비를 마련할 계획이다.
지원도 잇따르고 있다. 자매결연 도시인 경기 수원시는 공무원과 자원봉사자 15명으로 구성한 긴급지원단을 보내왔다. 수원시 종합자원봉사센터는 쌀과 라면 이불 등 구호물품 2.5t과 ‘사랑의 밥차’를 지원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박승호 포항시장에게 “산불로 인명과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해 가슴 아프다. 신속한 피해 복구가 이뤄지길 기원한다”며 위로했다.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도 이어졌다. ㈜조선내화가 1억1000만 원을, 한국공항공사는 2700만 원을 “이재민을 위해 써 달라”며 포항시에 전달했다.
포항제철은 이재민을 위해 속옷과 담요, 구급의약품, 생필품을 담은 구호품을 전달했다. 복구 작업을 하는 봉사단체와 공무원을 위해 간식도 제공하고 있다. 대구은행과 포항산림조합은 이재민들에게 생수와 김밥 등의 구호품을 지원했다.
이번 산불은 자연 발생 화재가 아닌 방화여서 정부와 지자체의 피해 지원과 보상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인적 재난은 법에 지원 기준과 근거가 없기 때문. 다만 포항시가 먼저 주민 피해를 보상한 다음 가해자 가족에게 구상권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이 있다. 지난해 검거된 울산 봉대산 산불 방화범은 징역 10년형이 확정됐고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4억2000만 원이 선고된 사례가 있다. 시는 보상이 마무리되면 법률 검토를 거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박 시장은 “우선 정부 지원과 예산을 최대한 확보해 피해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포항북부경찰서는 불을 낸 중학생 이모 군(12)을 조사한 뒤 귀가시켰고 서류만 대구지법 소년부지원에 보냈다.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미성년자(만 14세 미만)이기 때문이다. 현행 산림보호법은 방화자를 7년 이하 징역, 실화(과실)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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