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시켜줄게” 살 쪘는지 확인 한다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일 03시 00분


판치는 ‘나쁜 연예기획사’… 연예協 등록여부부터 확인을
■ 지망생 보증금 뜯고 상습 성추행 20대 영장

지방에 사는 A 양은 댄스가수가 꿈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1년 8월 인터넷에서 VIP엔터테인먼트라는 기획사의 ‘데뷔 임박 걸그룹, 멤버 추가 모집’ 광고를 보고 서울 영등포로 왔다. 오디션 때 단 한 곡만 불렀을 뿐인데 바로 합격했다.

함께 온 부모는 낡고 허름한 기획사 건물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딸을 말리지 못했다. “A 양이 데뷔 전에 다른 기획사로 옮기면 곤란하다”며 보증금 300만 원을 달라는 대표 김모 씨(28)의 요구에도 순순히 응했다.

본문과 연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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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지만 A 양은 전문교육을 받지 못했다. 연습생들은 휴대전화로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췄다. 김 씨는 목검을 들고 다니며 험악한 분위기만 만들 뿐이었다.

첫날부터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시작됐다. 김 씨는 A 양에게 말을 건넬 때 어깨와 허리를 감싸 안았다. 가슴과 다리도 슬쩍슬쩍 만졌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에게는 “살이 쪘는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며 온몸을 만지고 껴안기도 했다. A 양은 “김 대표는 춤추는 여자 연습생을 노골적인 시선으로 바라봤고, 그러다 발기된 상태가 바지 겉으로 드러나도 거리낌 없이 계속 쳐다봤다”며 “아내와 딸을 두고도 다른 연습생과 동거한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고 말했다.

기획사 합격 9개월 만인 지난해 5월 A 양은 김 씨에게 보증금 300만 원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김 씨는 영업방해로 고소하겠다며 욕설과 함께 폭력을 휘둘렀다. A 양은 28일 동아일보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연예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피해자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A 양 등 10, 20대 가수 지망생 30명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보증금 명목으로 2억2000여만 원을 빼앗은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로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8일 밝혔다. 김 씨는 기획사 위치와 이름, 자신의 성까지 바꿔가며 피해자를 속였다. 그는 ‘6개월 이내 가수 데뷔’를 약속했지만 한 명도 데뷔시키지 못했다. 그는 싱글 앨범만 한 장 낸, 전과가 있는 무명가수였다.

연예인 지망생 200만 명 시대.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 1000여 곳의 연예기획사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연예인 오디션 붐을 타고 영세한 신생 기획사가 우후죽순 생겨나 2000여 곳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다.

연예기획사는 일정한 자격조건 없이 사업자 등록만 마치면 누구나 개업할 수 있다. 일부 연예인 지망생은 악덕 연예기획사에 들어갔다가 기획사 대표에게 성폭행을 당하거나 고문에 가까운 기합만 받다가 보증금을 뜯기기도 한다. 김 씨에게 피해를 당한 당시 17세 소녀의 아버지 C 씨(52)는 “청산유수로 말 잘하는 대표에게 속아 딸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성추행까지 당하게 해 후회스럽다”고 했다.

정부는 기획사의 성폭력, 사기 행각을 근절하기 위해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등록을 허용하는 ‘기획사 등록제’를 추진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기획사 등록제, 연예인 지망생 권익 보호 등을 담은 ‘대중문화 예술산업 발전 지원에 관한 법률’은 지난해 8월 발의됐지만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전수조사도 기획사 반발 등에 부닥쳐 400여 곳만 한 상태”라고 밝혔다.

결국 부모가 직접 발품을 팔아 양질의 기획사를 골라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신인을 뽑는 기획사라면 활동 중인 연예인이 있는지 확인하고, 한국연예제작자협회(350여 개),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200여 개)에 회원사인지 문의하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돈을 먼저 요구하는 기획사도 피해야 한다. 연매협 관계자는 “어린 지망생은 ‘연예인이 되기에 조금 실력이 부족하니까 기획사에 돈을 빨리 주면 데뷔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며 “돈을 요구하는 곳은 100% 엉터리 기획사로,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훈상·이철호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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